밀가루와 국수. 정미기

봄이네 논밭 | 2016.08.05 00:17 | haeum_se


논에서는 밀 타작을 하고, 모내기를 하고, 

모는 제법 자라서 이제 중병아리 만큼은 자랐어요.

초벌 김매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여하튼, 봄이네 살림. 밀가루는 올해도 나눌 만큼이 되지 못했어요.

이제. 8년째 밀 타작이었는데, 아직도 이러고 있습니다.

좋은 밀을 거두려고 애를 쓴다고는 해도, 

무언가 이곳을 통해서 나눌 만큼이 되면 좋겠다는 마음입니다만.



지난 겨울, 아래 도가리에는 히어리베치라는 녹비작물을 심었습니다. 

거름을 하지 않는다면, 다른 방도를 찾아야겠다. 이대로라면,

해마다 소출이 더 줄어들 테니까요.

윗도가리는 벼든 밀이든, 그래도 여느 논만큼 소출이 나는 형편이었으니까요.

아랫도가리에는 녹비작물을 해서, 한해 휴경을 한다 해도,

윗쪽만이라도 제대로 나면, 조금이나마 블로그를 통해서

밀을 나눌 수는 있지 않을까, 기대가 있었습니다만,

그러지 않았어요.

윗도가리도 올해는 그 어느 해보다 밀이 적게 났고,

그저 다음해 종자를 마련했으니, 그것만으로 됐다 싶을 만큼이었어요.




해마다 중요한 작물 가운데, 밀과 완두콩은 좋지 않았습니다만,

다행히, 마늘이며 양파는 단단하고 아삭하고 알싸한 알이 맺히고,

소출도 적지 않았습니다. 적당히 나눌 수 있었어요.

한여름 더위가 길게 이어지고 있지만,

밭에서 난 것들 덕분에 잘 지내고 있습니다.




작년에는 새끼 제비가 한동안 마당을 들락거렸는데,

올해는 딱새. 이삼일 집을 비운 적이 있었는데,

아마 그 때부터 집을 짓기 시작했나봅니다.

숫컷과 암컷이 서로 번갈아 드나듭니다.




마루, 대들보 위에 딱새 둥지.

가만히 방 안에 앉아서 구멍으로 밖을 내다봅니다.

자세는 좀 어정쩡하고, 금세 목이 아파옵니다만,

방에 앉아서 딱새 둥지를 볼 기회란,

평생 이번 한 번뿐일지도 모르니까요.

어미가 벌레를 잡아와서 가까이 오는 기척이 나면,

새끼들이 고개를 내밀고 소리를 냅니다.

높이 있어서 가만히 있을 때는 새끼가 보이지 않다가

고개를 내밀고 먹이를 달라 하는 때에 새끼들 머리가 들락날락합니다.

대여섯마리쯤입니다.

딱새는 제가 마루에다 집을 지어 놓고는 

사람 드나드는 것에 엄청 신경을 씁니다.

제비가 사람들 아랑곳없이 머리 위로 지나다니는 것하고는 딴판이에요.

저나 아이들이 마루에 앉아서 뭘 하고 있으면, 

새끼가 아무리 배고프다고 해도,

벌레를 물고는 마당 밖에 앉아서 기다립니다.

그러니 식구들 모두 딱새 눈치 보느라, 

마루에 오래 앉아 있을 수가 없었지요.

그렇게 보름쯤 지내고, 다시, 둥지만 남은 조용한 집이 되었습니다.




"백중(음7.15)에는 마을 사람들끼리 몸에 좋은 것 먹고, 천렵하고, 그러고 쉬는 날이야. 놀고.

집집이 돌아가면서 풀 거름 한다고. 하루에 한집씩 그렇게 돌아가믄서 해. 요즘이야 몇 날 며칠 

자기집 일 혼자 하느라, 기운도 안 나고 힘도 더 들고 그러지만, 그때는 똑같이 일을 해도,

제 집 일을 혼자 하는 게 아니라, 한집씩 돌아가면서 그 집 일을 했어. 그러니까 먹고 놀 때도

같이 하지. 요즘이야 뭐 그런 날이 남았나."

아랫도가리, 겨우내 녹비작물을 키웠던 곳에서는 모가 더 잘 자라고 있습니다.

가을에 나락만이라도, 조금 더 여러 집에 보낼 수 있게 되기를 바라고 있어요.




논 옆에는 아이들 친구 집이 있어서, 논일 하는 사이 저희들끼리 모여 놉니다.

두 집 모두 3남매의 집. 그러니까 두 집 아이들 가운데 한 녀석 빠지고도 저만큼.

서로들 모여 놀 수 있을 시간이면 잠시도 놓치지 않습니다.

자동차 걱정만 하지 않을 수 있으면, 애저녁에 아이들끼리 걸어서 놀러다닐 만한

거리입니다만, 아이들도, 어른들도 자동차에 갇혀 있어요.




할매, 할배 모두 집을 비운 옆집, 앵두나무 집에는

그렇게 집이 비어 있는 사이, 새 식구가 생겼습니다.

살림살이를 하는 식구들도 어서 돌아오기를.

또 새로운 사람들이 그 살림을 잘 물려받기를.

부디, 언제까지나 마을이 왁자하기를 바라는 마음이 커지는 때입니다.



밀가루는 어느 해보다, 아쉽고도, 안타까운 마음이에요.

이제, 올 가을에는 풀거름이며, 무엇이든 잘 마련해서,

내년 이맘 때에 서로 반가운 소식을 적게 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소식을 기다렸던 분들께. 죄송한 마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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