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 쇠러 서울에 다녀왔습니다. 늦었지만, 이곳에 다녀가시는 분들께 새해 인사 드립니다. 설 다음날 아침, 부모님이 사시는 아파트 옥상에서 찍은 사진입니다. 서울에서 태어나 30년 넘게 살았던 동네는 북한산 바로 아래이지요. 어릴 적에 저 산으로 해가 넘어가는 것을 보면서 저녁밥을 먹으러 집에 들어가곤 했던 장면이 또렷합니다. 대학을 졸업하고 회사에 다니기 시작할 무렵에는, 기회만 생기면 친구와 함께 깜깜한 밤에 산꼭대기에 올라갔다가, 날이 훤해져서야 내려오기도 했구요. 그러니 제게 서울,은 변두리 저 산 아래 동네를 중심으로 펼쳐져 있습니다. 제법 길게 서울에서 묵었던 덕분에 반가운 사람들 여럿을 만나고, (그 중에는 이 블로그를 통해서, 알게 된 분들도 있었어요. 얼굴을 보기는 처음이었는데, 왜 그리 ..
저희가 이 마을에 이사를 오고 나서 지나는 할매들이 이구동성으로다가 아이고, 귀신 나올 것 같더니 이제 사람 사는 집 같네. 마을에 기저귀 널은 거 얼마만에 보노. 하시면서 아주 흡족한 표정으로 한마디씩 던진 날은, 마당에 새하얀 기저귀를 가지런히 널어 놓은 날이었습니다. 애기 울음소리와 기저귀 널린 마당 덕분에 저희는 마을 어른들께 더 귀염을 받는 젊은 것이 되었지요. 오랫만에 후배에게서 연락이 왔습니다. 다음주에는 아기를 낳는답니다. 기다리고 기다리다가 병원의 힘을 빌어서 생겨난 아이입니다. 남자 아이와 여자 아이의 쌍둥이라지요. 다행히, 크게 아픈 곳 없고, 아기들도 잘 자란다고 했습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아기 입을 것이며 잠잘 것 준비한 이야기도 나왔습니다. 기저귀 이야기가 빠질 리가 없..
경상남도 하동군 악양면 정동리 부계마을. 스물세집, 일흔여덟명이 살고 있는 마을입니다. 오늘은 반년에 한번씩 하는 대동회 날입니다. 사흘전부터 이장님은 날마다 방송을 합니다. '동민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마을회관에서 알려드립니다. 내일은 부계 대동회 날입니다. 동민 여러분은 한분도 빠지지 말고 동사로 나오시기 바랍니다.' 한달 전 새로 이장이 된 아저씨는 아직도 방송할 때면 긴장이 되는지, 한 단어 한 단어 말할 때마다 아주 길게 뜸을 들입니다. 억양은 이곳 악양 말 억양인데, 면사무소 방송하드끼 서울말 단어를 골라씁니다. 동네 할매들, 듣다듣다 고마 내 속이 탄다, 속이 타. 하십니다. 대동회 날은 온 마을 사람들이 온종일 모여 먹고 떠들고 합니다. 아,아, 아침에는 결산도 하고 회의도 합니다. 마을에..
그동안 쌀 팔고, 유자차, 배쨈, 효소 팔아서 번 돈으로다가 밥 한 끼 사 먹고 왔다. 아정의 블로그를 통해서나, 또 이곳을 직접 찾아주거나 했던 몇몇 마음씨 착한 사람들이 그저 사진 몇 장, 글 몇 줄만 보고 이것저것 사 주고, 응원해 준 덕분이다. 그 중 누구든 악양에 들르게 된다면, 더 기껍고도 즐거운 밥 한 끼를 하겠지만, 아직은 없으니까, 우리끼리라도 맛있는 것을 먹어야지. 맛있는 거 먹고, 기분 좋아지면, 그 많은 사람들한테 고마운 마음이 얼마나 더 무럭무럭 피어날까. 기껏해야 일년에 몇 번 있을 점빵이지만, 이제 곧 마감도 얼마 남지 않았으니, 한번은 꼭 할 일이었다. 방바닥이 궁뎅이 덕 본다는 추위도 조금 누그러졌겠다, 그래서 식구들 모두 나섰다. 사는 곳은 경남 하동 악양인데, 장 보러 ..
세 식구 나란히 누워 자면 꼭 맞는 작은 방인데, 아기 핑계를 대고 날마다 방바닥이 절절 끓게 불을 때서 그런지 아궁이에 땔감이 꽤 들어간다. 한달에 두어번 나무를 하러 마을 뒷산에 가는데, 그 동안 들고다닌 톱이 목공용 톱이었다. 그렇잖아도 톱질하는게 익숙치 않은데, 목공용 톱으로 땔감을 하려니 몇 시간 일하지 않아도 어깨며 손목이며. 이건 뭐. 엔진톱을 살까 생각도 했지만. '비싸, 무거워, 다루기 어려워, 위험해, 꾸준히 관리해야 돼, 시끄러워 귀 아파...' 이런 까닭으로 그만두기로 하고. 일단은 손톱으로 땔감하기에 알맞은 톱을 장만하러 구례장에 갔다. (아, 그래도 체인톱은 하나 마련할 예정, 휘발유 엔진톱 말고 충전식으로다가...) 간판에 아예 톱수리 전문.이라고 쓰여 있다. 땔감할 때 쓸 톱..
쌀이나 유자차, 석류 효소, 콩은 별다른 일 없이 잘 갔지만, 배쨈은 저희가 잘 확인을 못 했어요. 배쨈을 충분히 여러 번 만들어 보지 못 한데다가. 유기농 설탕으로 만든 건 처음이었지요. 정제 설탕으로 만든 것하고 크게 다르지 않겠거니 하고 보내놓고는, 그제서야 담아 두었던 쨈 뚜껑을 열고 빵에 발라먹어야겠다 했지요. 어어엇, 헌데 이게 너무 되직한 거예요. 게다가 너무 추운 곳에 두었더니 꿀이 소는 것처럼, 몽알몽알 단 알갱이가 생겼지 뭡니까. 꿀을 따는 분들은 그렇게 말해요. '꿀이 솔다.'라고 하는데, 마치 설탕 알갱이처럼 당분이 맺히는 거죠. 여튼, 좋은 재료 썼다고 비싸게 받아서 처음으로 나눴던 건데, 이 모양이라니. 부랴부랴, 과수원에 전화부터 했지요. '저 혹시 배 남은 것 있나요?' 다행..
오늘 쌀과 콩을 보냈습니다. 며칠 사이 추가로 주문하신 분을 빼면, 내일이나 늦어도 모레쯤에는 주문하신 것들을 받으실 겁니다. 지난 여름 밀가루에 이어(http://haeumj.tistory.com/9) 이번에도 여러 고마운 분들이 나누어 주고, 나누어 받고 그랬습니다. 맛 보기는 커녕, 구경도 못 한 먹을 것을 그저 사진 몇 장, 글 몇 줄만 보고 덜컥 돈부터 보내시다니, 저처럼 의심많고, 물건값 깎기 좋아하는(^^) 사람은 좀체 다다를 수 없는 마음입니다. 물건을 보내면서, 간단한 글도 함께 보냈습니다. 이제, 조금 더 낯 익은 분도 생기고, 몇 번 글을 주고받거나, 목소리를 듣거나 하는 일도 생겨서 조금씩 다른 글을 보내드렸지만, 아래 내용은 거의 같습니다. __________________ 지난 ..
2009년 마지막 날 아침. 악양에 눈이 내렸다. 봄이 엄마가 어렸을 때는 눈사람을 만들고, 얼음이 꽝꽝 언 무논에서 썰매를 탔다고 했지만, 자꾸 날이 따뜻해져서, 이제 악양에 눈 쌓이는 일은 드문 일이 되었다. 방문 열고 나왔더니, 마당에, 골목길에, 돌담에, 지붕에, 눈이다. 대빗자루 들고 나가서 마을 어귀까지 쓰는 둥 마는 둥 흉내만 내고 들어와서는 부랴부랴 아이에게 옷을 입힌다. 삼촌이 사 준 부츠를 외갓집에 두고 왔다. 그것만 있으면 더 좋았을 텐데. 손가락 장갑을 벙어리 장갑 끼우듯 하고는, 고무신을 신겼다. 차갑고, 뽀드득거리는 것을 느끼기에는 더 좋겠지. 그 사이 해가 떠서, 담장 안으로 볕이 들기 시작했다. 마당에 내려놓았더니, 처음에는 머뭇머뭇하다가 자기 발자국 구경하면서 돌아다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