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가루 파동이 벌써 몇 주 전 이야기다. 낮에는 따뜻해도, 밤에는 제법 추워서, 잘때는 길고 따뜻한 옷을 꺼내 입는다. 벼에 이삭도 고개를 숙인다. 올해 농사는 작년에 견주면 아주 형편없다. 아마 쌀은 그저 먹을 것 정도가 나올 것이다. 어떤 일은 때를 놓쳤고, 어떤 일은 제대로 하지 못 했다. 이제 추수까지 한 달쯤 남았는데, 아직 고개를 숙이지 않은 이삭이 많다. 그것들은 아마 추수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한다. 적당한 때에 적당한 일을 하지 않으면 어떻게 되는지, 똑똑히 본다. 다행히 굶지는 않을테니까. 잘못한 일이 많아서 그만큼 배우는 게 많다. 밀은 받지 못한 사람도 없는 듯하고, 우리도 아주 맛있게 먹고 있다. 그리고, 어제 밀가루가 돌아왔다. 뜻밖의 상자. 린처 토르테와 화이트초콜렛쿠키. 정성스..
모두 여든세 분이 밀가루와 밀쌀을 주문하셨습니다. 한 분은 입금만 하셨습니다.(노승희님 13,000원. ㅠ.ㅠ 아직도 연락 기다리고 있습니다.) 지난 주에 모두 발송을 했습니다. (한 분은 휴가인 까닭에 내일 발송합니다.) 씨를 뿌리는 것부터, 거두기까지 태어나서 처음 지은 밀농사입니다. 900평이 조금 넘는 논입니다. 4마지기 반쯤이지요. 땅 넓이라는 건 얼만큼의 씨를 뿌리는가가 단위입니다. 한 평은 한 줌의 씨앗을 뿌릴 만한 땅이고, 마지기는 한 말의 씨앗을 뿌릴 만한 땅입니다. 벼농사를 지을 때는 요즘 도시 사람들 입성으로 한 마지기 땅에서 한 식구(4인) 1년 먹을 쌀이 나옵니다. 그러니까 이번에 밀농사를 지은 땅은 네 식구 일 년 먹을 쌀이 나오는 땅이지요. 이만한 땅에 밀을 심으면 대체 얼마나..
정말이지 이렇게 타작을 해도 되나 싶다. 지나가다 보시고는 다들 농사 잘 됐네. 밀 좋네. 라고 하신다. 한 줄 쓰고, 사진 몇 장 올려놓고는 며칠이 지났다. 일주일쯤? 씨뿌리기부터 타작까지. 첫농사다. 지금 밀은 잘 널어 놓았다. 오늘 내일. 날 봐서 모레까지 볕과 바람에 말리면 얼마는 (뽀사서) 가루를 내고, 얼마는 껍질을 깎아서 통밀을 내고, 또 얼마는 다시 푸대에 담아서 재어 놓을 것이다. 이 사진을 찍고 그 다음날부터 본격으로 일이 시작되었다. 논두렁에 풀을 베고, 콤바인이 들어갈 수 있도록 가장자리를 낫으로 베었다. (농사일기 따위 따로 쓸 리가 없으니, 조금만 자세히 적어둔다면) 콤바인은 대개 논으로 들어와서 시계 반대방향으로 돌면서 타작을 한다. 기계 생긴 것에 따라 다를 수도 있겠지. 내..
저녁에 상추쌈을 먹었습니다. 처음 먹는 거였어요. 춘분을 하루 앞두고 상추쌈을 먹다니. 잎은 작고 아삭아삭하고 고소하고, 또 단맛이 났어요. 겨울이 따뜻한 곳이어서 그런가, 마치 시금치나 냉이나 쑥처럼. 상추도 죽지 않고 겨울을 넘긴답니다. 이건 요즘 따뜻해졌다고 갑자기 그러는 건 아니라고 해요. 그러니까 겨울을 넘긴 상추입니다. 겨울을 넘긴 상추는 처음이지요. 얼었다 녹았다 그러면서 노지에서 겨울을 보낸 상추. 이제 조금 지나면 꽃대가 올라온답니다. 그렇게 얼마 지나면 밭을 갈고 새로 무언가를 심어야 하니까, 지금 먹을 수 있을 때에 따서 마을 사람들끼리 나눠먹습니다. 시장에 내다 팔 만큼 크지 않거든요. 그덕에 우리도 얻어 먹었어요. 상추잎이 김장배추 노란 속잎보다 작고, 그것보다 더 달고 고소합니다..
오래된 집입니다. 두 사람이 눕기에 꼭 맞춤한 2평짜리 방이 두 개 있고, 그보다 아주 약간 큰 부엌이 있습니다. 대들보에는 일천구백육십팔년 상량.이라고 씌어 있습니다. 이 작고 오래된 집을 고치겠다고 했더니, '새로 집 짓는 값보다 더 들긴데','고치봤자 표도 안 나고, 고마 새로 지라','처음 생각보다 돈이 딱 두 배는 들기다.' 하십니다. 얼추 가진 돈 다 쓸 때쯤이 되니, 뭐 하나 틀린 말이 없었다는 것이 분명합니다. 집 사는 돈 하고, 집 고치는 돈 하고 비슷하게 들었거든요. 수리비도 처음 생각보다 두 배가 더 들었으면 들었지 적게 들지는 않았습니다. 그래도 이제 조금만 더 손질하면 당장 들어가서 살 수는 있겠다 싶습니다만, 공사지원비 주겠다고 점검을 나온 면사무소 공무원은 대체 공사를 하기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