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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 여든세 분이 밀가루와 밀쌀을 주문하셨습니다.
한 분은 입금만 하셨습니다.(노승희님 13,000원. ㅠ.ㅠ 아직도 연락 기다리고 있습니다.)
지난 주에 모두 발송을 했습니다. (한 분은 휴가인 까닭에 내일 발송합니다.)
씨를 뿌리는 것부터, 거두기까지 태어나서 처음 지은 밀농사입니다.
900평이 조금 넘는 논입니다. 4마지기 반쯤이지요.
땅 넓이라는 건 얼만큼의 씨를 뿌리는가가 단위입니다.
한 평은 한 줌의 씨앗을 뿌릴 만한 땅이고, 마지기는 한 말의 씨앗을 뿌릴 만한 땅입니다.
벼농사를 지을 때는 요즘 도시 사람들 입성으로 한 마지기 땅에서
한 식구(4인) 1년 먹을 쌀이 나옵니다. 그러니까 이번에 밀농사를 지은 땅은
네 식구 일 년 먹을 쌀이 나오는 땅이지요. 이만한 땅에 밀을 심으면 대체 얼마나
나누어야 하나, 그런 계산은 처음부터 없었습니다. 헌데 여든세 분.
그리고도 친척과 친구와 이웃과. 그렇게 훌쩍 백여 명이 넘는 사람들이
밀가루와 밀쌀을 나누어 먹게 되었습니다. 농사지은 수고에 비하면
참으로 많은 사람과 나눌 수 있게 된 것이지요. 참 복도 많습니다.
무엇보다 아정이 블로그를 통해 오랫동안 쌓아온 신뢰가 있어서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제가 거기에 덜컥 올라타게 되었구요.

밀가루와 밀쌀을 받은 여러 분이 잘 받았다고, 맛이 좋더라고 문자와 메일을 보내주셨습니다.
하나하나 고마운 말씀들이었는데, 늦게서야 고마운 인사를 하거나, 혹은
미처 답변을 드리지 못 하거나 그랬습니다. 
모두가 이 글을 보게 될 리는 없지만, 이렇게나마 고마운 마음을 대신 전합니다.
시골에 내려와 서툴기 짝이 없는 살림에, 농사인데도
다른 이들이 쉽게 겪을 수 없는 즐거운 경험을 하게 해 주셨으니까요.
물론, 서울에서 하던 계산법으로는 어처구니없는 산수가 나옵니다.
그걸 자세히 말씀드릴 수는 없어요. 밀가루와 밀쌀을 나누신
여러분들에게는 말하지 않는 편이 나을 겁니다. 게다가 제 계좌번호도 알고들 계시고요. -,.-
요즘 우리 마을에서는 토란을 까느라 할매들이 종일 앉아 일을 합니다.
900평이 아니라, 그 몇 배되는 농사를 지으면서도 말이지요.
그렇게 일하시는 할매들한테는 댈 게 아닙니다.
그 수고를 서울식 계산기로 두들기면, 토란대를 드실 수 있는 분은 아마 거의 없을 거예요.
농산물이라는 게 이 땅에서는 그런 식으로 팔려나갑니다. 
그렇다 해도, 이번 일이 즐겁고 고마운 일이었다는 느낌이 줄어들지는 않습니다.
아직은, 어떻게 농사일을 하게 될 지, 어떻게 시골 살림을 꾸려가게 될 지,
잘 모르겠는데 말이지요. 잘 모른다고는 해도, 잘 될 수는 있겠구나 싶은 마음이 들었거든요. 
몇몇 분들께서는 돌아오는 가을과 또 내년을 약속하는 말씀도 하셨습니다.
저희가 농사짓는 땅이 넓지는 않아도, 분명 어떻게든 나누어야 할 만큼
곡식이 나올 겁니다. 이번과 같은 방식일지 그렇지 않으면 어떤 방식일지
더 고민해서 알려드릴게요. 더 열심히 농사도 짓고요. 그리고, 그것들을 
다시금 여러분과 나누게 되기를 저희 또한 무척 기다리겠지요.

봄이는 이제 태어난 지 아홉달입니다. 며칠 전부터 손을 놓고 서 있는 연습을 하지요.
첫 아이라 저 또한 모든 것이 새롭습니다만, 아이가 뒤집고, 기어다니고, 두 손을 놓고 서는
모습을 보면, 언제나 온 힘을 다해 애를 쓰고, 노력하고 있다는 게, 놀랍고 감동적입니다.
서툴게 시작한 시골 살림이 '아이가 무언가를 배우듯' 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받으신 밀가루와 밀쌀은 아껴두지 마시고 얼른 드세요.
그거 보통 밀가루처럼 생각하시면 금방 벌레 납니다.
아, 참. 밀쌀은 굳이 먼저 불리지 않아도 쌀하고 같이 밥하셔도 괜찮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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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혹시, 못 받으시거나 뭐, 그런 비슷한 분 없으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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