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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계마을

닭 키우기.

haeum_se 2013. 5. 7. 12:22




봄이의 절대 미각.

봄이가 아직 돌이 되지 않았을 때에는 닭을 기르지는 않았습니다.

마트에서 친환경 달걀. 뭐 그런 것을 사다 먹었는데,

그 무렵에는 봄이가 달걀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생각했어요.

달걀로는 뭘 해서 밥상에 올려도, 쫌 시큰둥.

먹으라고나 해야 한 번 먹고. 뭐 그런 식이었죠.




그러다가, 어느 날, 윗동네 사는 이웃집에서 달걀 몇 개를 주었습니다.

솔이네 달걀.

닭은 풀어 놓고 기른 것이었습니다.

온 마당과 동네를 헤집고 다니는 닭은 

주인도 모르는 곳에 달걀을 숨겨 놓았고,

솔이네는 그것을 하나씩 찾아다가 모아 두었는데, 그 중에 몇 개를 준 것이지요.

이 달걀 덕분에, 봄이가 얼마나 달걀을 좋아하는 아이인지 알 수 있었습니다.

남김없이. 

그거, 엄마 아빠도 맛 좀 보면 안 될까?




달걀의 진수를 맛보려면 역시 풀과 벌레를 많이 먹은 닭이 낳은 유기농 달걀을 골라야 한다.

혹시라도 닭을 기를 수 있는 형편이라면 열 일 제쳐 두고 닭부터 길러야 한다. 닭은 여러 가지로 매력적인 집짐승이다. 알에서 깨어나자마자 주위를 한번 휙 둘러보고는 둥지에서 펄쩍 뛰어내려 마당을 활보하고 다니는 것부터가 여간 신비롭지가 않다. 어미 닭을 졸졸 따라다니며 모이를 쪼기도 하고 벌레를 잡아먹기도 하는 노란 햇병아리들의 행렬은 평화 그 자체이다. 요것들이 물 한 모금 마시고 하늘 한 번 보는 모습은 또 얼마나 귀여운지. 

병아리를 거느린 어미 닭은 새끼들이 위험하다 싶으면 금세라도 달려들 태세로 깃털을 곤두세운다. 새끼를 품은 어미들이 다 그렇기는 하지만 암탉은 알을 품고 있을 때부터 유별나다. 먹이가 있을 만한 곳을 발로 긁어 놓고는 자기는 쪼아 대는 시늉만 하고 새끼를 먹인다. 해가 지면 병아리들을 가슴에 품어 재운다. 그리고 한 해에 백 개도 넘는 달걀을 우리에게 주는데,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기르는 데 드는 공력에 비하면 과분한 집세이다.


<스스로 몸을 돌보다>에서.




마트의 친환경 달걀과 놓아 기른 닭이 낳은 달걀은 이름만 같을 뿐.

봄이의 기준으로는 전혀 다른 것.

그리고 얼마 후에 이번에는 좀 더 멀리 사는 이웃. 삐삐네에서 달걀을 받아 옵니다.

그 귀한 것을 두고, 봄이는 잘 먹었으나,

품평하시기를 잊지 않으셨는데, '맛은 있지만 솔이네 것만 못하다.'라는 것이었습니다.

삐삐네 닭은 닭장 안에서 지내고 있었거든요. 

물론 아무리 마당에 있는 닭장이라고 해도, 

닭들의 삶은, 축사에서 살고 있는 닭에 견줄 것은 아닙니다.

그러니, 일단 맛있게 먹고 난 후에, 그래도 솔이네 것만은 못하다는 지적질을 한 것이지요.




그리고, 겨울 무렵인가,

솔이네 달걀을 얻어 와 반찬으로 먹으면서

'솔이네가 달걀 또 줬어. 맛있지?'

'아니, 이거 솔이 달걀 아니야. 삐삐 달걀.'

'솔이네 거라니까.'

'아니야. 삐삐 달걀이야!'

얘가 뭐라는 거야. 너는 솔이네가 달걀 주고 간 것도 모르잖아.




그러고 나서, 얼마 있다가 솔이네 닭들 살고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겨울이라, 날이 추워서 풀도 없고, 벌레도 없고, 

그래서 닭들한테

사료하고 음식 남은 것을 주고 있다고 했어요.

네, 봄이는 오로지 달걀 맛으로다가

풀 먹고 자란 닭과 사료 먹고 크는 닭. 

이 녀석들이 낳는 달걀을 구분했던 것이지요.




밭 한 켠에 닭장을 마련하고, 닭을 키우겠다고 마음 먹은 것은

봄이의 절대 미각을 지켜 본 결과라고나 할까요.

이제, 마트에서 달걀 사 먹는 것은 참 어렵겠구나. 얘야.




닭들은 무엇이든 잘 먹습니다.

집에서 나오는 모든 음식 찌꺼기는 닭장을 거쳐서 닭똥이 된 다음,

밭으로 갑니다.

어쩌다 가끔 먹지 않는 것들도 적당히 짓이기고, 뒤적여서 좋은 거름으로 만들지요.

여름에는 풀도 베어 주고, 자기들이 벌레도 잡아 먹고 그러지만,

겨울에는 등겨나, 밀기울 남은 것 따위와 음식 찌꺼기로 살아갑니다.

달걀이 정말 달라요. 직접 키우고 있으니까, 더 살펴볼 수 있게 되었지요.

먹이가 달라지는 만큼, 달걀 달라지는 것이 보입니다.

껍질이 파삭 깨어지는 것도,

노른자가 얼마나 탱글탱글한지,

노른자와 흰자끼리 서로 얼마나 끈끈한지. 

맛도, 촉감도, 무엇이든.




두 해 닭을 키웠습니다만, 지난 겨울

봄이가 귀여워하던 닭들은 추위와 또 이런저런 일들로

몇 마리 죽었습니다.

그것도 암탉으로만요.




장닭과 암탉의 비율이 거꾸로 가고,

또, 또....


여튼, 남아 있는 닭은 잡아서 삶아 먹고,

두었다가 먹고, 그러기도 했습니다.

닭은 정말 크고, 뼈가 단단하고, 멋진 새였어요.

어렸을 때부터 왜 닭뼈는 개에게 주면 안 되는지 

늘 궁금했는데, 직접 기른 닭을 잡아먹으면서 알게 되었지요.

치킨 집에서 배달 되어 오는 닭의 뼈는, 

그게 정말 정말 심각하게 부스러지기 쉬운 상태였다는 걸.




다음 장이거나, 혹은 그 다음 장날에

아이들과 함께 병아리를 사 올 계획입니다.

닭장도 다시 손 보고,

좀 더 닭들이 잘 살 수 있도록 해서,

달걀도 쫌 더 많이 얻고, 

그리고, 기회가 닿는 다면 알을 품는 암탉도 볼 수 있도록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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