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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도 봄이네 살림 개장 이래 가장 글자 수 많은 포스팅이 되겠습니다.

맛있는 쌀을 고르고, 맛있게 밥을 해 먹기 위해서 염두에 두어야 할 것들을 생각나는 대로 하나씩 적어 둡니다. 쌀을 사먹을 때 보는 조건이라는 것이 품종(+상표), 유기농인지 여부, 구입처, 거둔 때, 도정한 날짜, 중량, 포장 사이로 보여지는 쌀알, 이런 것들이지요. 소비자가 이 이상 더 알아내기는 어렵습니다. 이런 것과 더불어서 직접 농사를 지으면서 알게 된 것, 몇 가지를 덧붙여서 적었습니다

어떤 것은 쌀을 사 먹는 사람으로서 눈여겨 보고 기억해 두면 좋은 것도 있겠지만, 대개는 그냥 그런 것이 있구나 흘려 들을 만한 것입니다. 충분히 검증되지 않았다,라는 것이 큰 이유이겠지요. 그도 아니면 쌀을 사는 사람 입장에서는 (직접 농사를 짓기 전에는) 알 수 없거나, 조율할 수 없는 조건이구요. 그보다는 쌀이라는 것은 농사짓는 이도 어쩔 수 없는, 한 해 동안 버무려진 자연의 총합. 같은 것이니까요.

 

 

1. 쌀의 품종.

쌀 살 때, 철원 동송의 <오대쌀>이니 해남 옥천의 <한눈에반한쌀(히토메부레)>이니 김포 <고시히카리>니, <밀키퀸>이니 하는 것 들여다 보시지요? 모두 쌀 품종 이름입니다. 품종마다 맛이 꽤 다릅니다. 대개는 일본에서 종자를 만들고, 우리나라에서 들여와 심습니다. 위에 세 품종은 꽤 널리 알려져 있고, 우리나라에서는 맛있다고 인정을 받고 있는 쌀들이지요. 이것이 아니더라도 흔히 품종을 보고 고를 때는 추청(아끼바레, 아끼바리)을 고르라고 합니다. 아래 표에 있는 최고품질 품종이나, 일품, 일미, 남평, 동진 같은 종자도 맛이 좋다지요. 하지만 쌀을 내놓으면서 무슨 품종인지 밝히는 정도라면 이미 어느 정도 수준의 맛을 내는 종자입니다

사실 저는 고시히카리는 맛이 아주 좋다고는 생각이 안 들거든요. 최근에 일본에서 나온 종자인 밀키퀸도 비슷합니다. 이게 일본 사람 취향에 아주 잘 맞춰져 있어요. 요즘 맛이 좋다고 하는 쌀의 경향이라는 게 찰기 있고, 기름지고, 단맛이 돌고, 매끈한 느낌. 쌀알은 작아지고요. 이런 쪽으로 흘러갑니다.

간단히 말하면 더 찹쌀 같은 멥쌀. 찹쌀 맛이 나는 멥쌀을 두고 맛이 좋다고들 하지요. 식당에서 파는 음식을 먹으면 요즘은 어딜 가나 너무 달지요. 달고 매끈해요. 채소 같은 것은 훨씬 심각한데, 여하튼 쌀의 품종 개발도 곡식에서 느껴지는 흙냄새 같은 것. 이런 걸 점점 지우는 쪽으로 갑니다

그러니까 음식들이라는 게 어딜 가나 비슷한 맛을 내고, 그것을 맛있다고 여깁니다. 아래 적어두는 다른 조건들을 따질 때에도 이것은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좋아하는 맛이 없고, 가려낼 줄 아는 혀가 없으면, 대개는 그냥 요즘 유행하는 맛을 고르게 되는 겁니다. 맛이 좋다라는 것은 정말이지 아주 개인적인 것이니까, 남들 얘기에 별로 신경쓸 필요가 없어요. 정확히 말하자면 문제는 '내가 좋아하는 맛'이 있나 하는 것이고, 그걸 내가 가려내고 즐길 수 있냐 하는 것이지요. 어쨌거나 쌀이 종자따라 맛이 달라지는 것은 분명합니다. 그러니 내가 무슨 품종의 쌀을 사고 있나 하는 것은 늘 염두에 두시길.

 

* , 요즘 품종 선전할 때에 품종에 따라 뭐 영양이 훨씬 뛰어나고 성인병에 좋고, 어쩌고 하는데요. 품종에 따른 영양소 차이는 무시하셔도 됩니다. 물론 밥의 영양 차이는 날마다 가장 많이 먹는 음식이기 때문에 작은 차이가 나더라도 몸에는 계속 쌓이게 되어 있습니다. 뭔가 특출난 기능이 있는 음식을 어쩌다 가끔 비싼 돈 주고 먹는 것보다는 좋은 밥을 먹는 게 그래서 중요하지요. 그러나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종자를 불문하고 좀 맛 없다는 쌀, 유기농 재배한 것을 현미로 먹는 게 훨씬 낫습니다. 영양 면에서는 그렇습니다. 영양소를 내세워서 눈을 어지럽히는 것에 너무 휘둘리시면 안 됩니다.

 

아래 표는 농진청 국립식량과학원에서 농사지으라고 보급하는 종자 목록입니다. 찹쌀과 통일형 벼까지 있기는 합니다만, 어쨌거나 생각보다 품종이 꽤 많습니다. 고품질 품종이거나 최고품질 품종이라면 일단 품종에 따라 달라지는 것보다 다른 조건들이 중요해진다고 볼 수 있어요. 철원 오대쌀은 다른 동네에서 거의 안 심습니다. 그게 딴 동네에 가면 무엇보다 맛이 뚝 떨어져요. 이게 오대쌀이 맞나 싶을 정도로요. 사실 종자에 관한 것이라면 채종이라든가 또 다른 이야기들이 있습니다만, 그것은 다음에.

 


구분

조생종

중생종

중만생종

최고품질 품종

운광

고품, *하이아미

삼광, 호품, 칠보, *진수미

고품질

품종

일반

지역


오대, 중화, 상미, 태봉, 새상주, 고운, 황금보라, 산들진미, 평원, 운미, 한들, 호반, *보석, *조아미, #금영

화성, 화영, 수라, 화봉, 삼덕, 상옥, 풍미, 풍미1호, 청아, 해찬물결, 청안, 보라미, *해오르미, #미광, #청남

추청, 일품, 대안, 일미, 동안, 남평,신동진, 새추청, 주남, 동진1호, 호평, 평안, 청호, 온누리, 주안1호, 동진2호, 다미, 말그미, 청담, 황금누리, 새누리, 황금노들, *청청진미, *진백, *다청, #영호진미, #청해진미, #호농

특수

지역

화동, 진부올, 운두, 금오, 그루, 만안, 만추, 만호, 조안, 만나, 금오3호, 신운봉1호, 오대1호, 주남조생,조광, #한설, #조운, #대찬

서안1호, 해평, 금오벼2호, 만풍, #만종, #진보

새계화, 서간, 동해진미, #서명

안전성

품종

소백, 운봉, 남원, 오봉, 진미, 진부,신운봉, 상주, 둔내, 조령, 삼백, 상산, 운장, 삼천, 대진, 인월, 문장,중산, 진봉, 태성

봉광, 팔공, 동해, 화진, 장안, 청명,서안, 안중, 간척, 농안, 화중, 주안,금오벼1호, 안산, 내풍, 서진, 영해,광안, 원황, 소비, 안성, 중안, 진품,삼평, 화안, 만월, 석정, 금안, 대평,강백

낙동, 동진, 대청, 탐진, 계화, 만금,영남, 대야, 화남, 금남, 화신, 대산,화삼, 남강, 화명, 농호, 호안, 수진,호진, 종남, 서평, 화랑, 하남, 화신1호

특수미

품종

향미벼2호, 진부찰, 상주찰, 흑진주,적진주, 조생흑찰

신선찰, 화선찰, 설향찰, 대립벼1호, 영안, 흑광, 보석찰, 해평찰, 큰눈,눈보라, 한강찰1호, 홍진주, 고아미3호, 흑설

향미1호, 아랑향찰, 향남, 양조, 흑남, 미향, 동진찰, 흑향, 고아미, 백진주, 설갱, 만미, 고아미2호, 백진주1호, 신명흑찰², 백설찰, 신농흑찰², *보석흑찰, *백옥찰, *단미, *신토흑미², #고아미4호

초다수

품종

남일

다산, 남천, 안다, 아름, 한아름, 다산1호, 큰섬, #다산2호

한마음, 녹양¹, *드래찬, #보람찬벼, #세계진미, #목우벼

밭벼품종

농림나1호, 상남밭벼

 

이건 맛하고는 상관 없는 이야기인데, 위의 품종 가운데 통일형 벼가 있어요. 통일벼의 후손들이지요. 한아름, 다산, 큰섬, 녹양, 한강찰, 남천, 안다, 아름, 향미 같은 품종들입니다. 아마도 밥하는 쌀로는 안 팔 겁니다. 통일벼는 자포니카와 인디카를 교배시켜 얻은 품종입니다. 보통 밥 해먹는 쌀이 자포니카 계열이에요. 인디카는 동남아나 인도에서 먹는 쌀. 수확량은 많지만 바람 불면 날아가는 쌀입니다. 그쪽 지역에서는 맛이 좋은 쌀이겠습니다만, 한국에서는 인디카로 밥 해먹을 리가 없지요

1970년인가 품종이 개발되고 당시 대통령이 먹어보고는 밥맛이 좋다 하셨습니다. 당시에는 쌀 만큼 중요한 문제가 없었어요. 대통령하고 여러 사람들이 모여서 품평회를 하는데, 설문 결과를 무기명으로 적어서 내기로 했습니다., 대통령이 먼저 맛이 좋다에 크게 동그라미 치고 다른 사람도 잘 보라고 이름도 크게 적으셨습니다. 그래서 맛이 좋은 쌀이 되고! 1973년쯤 부터 재배를 시작했습니다만, 처음에는 아예 수확이 없는 논이 꽤 있었습니다. 그랬다가 좀 더 보완을 하고 해서 자급률 100%를 넘기게 된 것이지요. 덕분에 통일벼의 새 품종도 몇 가지 더 개발됩니다. 1975년에는 '유신'이라는 품종도 개발됩니다. 벼 품종 이야기입니다. (통일벼를 보급하기 전에 이집트의 벼 품종을 들여온 적이 있는데, 그것은 당시 대통령의 이름 뒷글자를 따서 '희농1'라고 했습니다. 이 품종을 들여오는 데에는 당시 중앙정보부에서 애를 썼다고 합니다. 농수산부 아니고요.) 

그해에 쌀 자급률 100%를 이루었고 아마도 3년 동안 자급률이 100%를 넘깁니다. 뭐 신문에서는 벼 농사 삼천 년 만의 쾌거 어쩌고 합니다만, 오래 갈 수가 없는 종자였어요. 공무원들은 이미 모내기를 한 논을 갈아엎는 일까지 서슴치 않았지만, 결국은 수많은 농민을 망하게 만든 종자입니다. 자급률 100%를 넘긴 쌀은 사람들이 먹지 않았죠. 맛이 없어서 안 먹으니까 100%가 넘어가는 겁니다. 1979년인가 그 무렵에 한동안 금지되었던 쌀막걸리 제조가 남아도는 통일벼 쌀을 어쩌지 못해서 다시 허가가 납니다. 통일벼를 두고 우리나라 종자 개발의 어쩌구저쩌구 하는 사람들은 자기가 직접 이 종자로 농사 지어서 그것만 먹고 살게 해야 합니다.

저희는 집에서 삼시 세끼 밥을 먹으니까요, 특히 밥맛이 좋은 철에는 뒤주 바닥이 후딱후딱 드러나요. 소비량이라는 게 정해져 있는게 아니거든요. 자급률도 마찬가지이지요. 자급률 100%라는 것은 쌀의 수출과 수입이 가능한 이후의 수치입니다. 그전에는 쌀이 난 만큼 먹었지요. 모자라면 굶는 겁니다. 그렇게 해서 늘 100%였습니다. 자급률 100% 어쩌고 했던 것은 쌀 생산량이 늘어난 것도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 아무 때나 식당을 찾아다니면서 솥뚜껑을 열어제끼는 '양곡 소비규제 단속'으로 쌀 소비량을 줄인 힘도 있습니다. (단속의 자세한 방침을 담은 1974년 12월 동아일보 신문기사 -> 서울시는 1975년 7월부터 다음달 9일까지 혼·분식 위반업소 1300여건을 적발 그 중 8개소는 영업취소, 691여개소는 1개월 영업 정지를 시킵니다.) 통일벼에 대한 좀 더 자세한 이야기는 한홍구 선생님의 글에 잘 정리되어 있습니다.


 * 통일벼를 농민들이 심을 수 없었던 이유 가운데는 밥맛의 문제와 냉해, 농약과 비료의 과다 투입, 시설 투자, 채종의 어려움 따위도 있었지만, 볏짚이 너무 짧다는 문제도 있었습니다. 초가집 지붕을 이을 수가 없었지요. 소를 먹이기에도 좋지 않았습니다. 초가지붕은 대개 이태에 한번 이엉을 얹어야 했습니다만, 통일벼를 심으면서는 지붕을 이을 수가 없었습니다. 이 문제에 대해서 보고를 받은 대통령은 '먹고사는 게 중요하지 지붕이 중요하다 말이요. 지붕을 개량하면 되지.'라고 했다지요. 시골 농가 지붕이 슬레이트로 순식간에 바뀌었던 것이 이 무렵입니다. 슬레이트와 통일벼가 뭐 필연적인 상관이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이런 사정도 있었어요.

 * 하나 더 덧붙이자면 자포니카 계열의 쌀은 전세계적으로다가 생산량 대비 유동량이 가장 적은 곡식에 듭니다. 재배하는 사람들이 곧 먹는 사람들인 곡식입니다. 밀이나 인디카 계열의 쌀이나 옥수수는 아마 지금 이 순간에도 바다 한 가운데에 축구장만 하게 떠 있는 곡물 수송선에 실려서 어디론가 가고 있을 겁니다. 대양을 건너 대륙을 넘나들면서 말이에요. 유동량이 적다는 건 스스로 농사지어서 먹지 않는 한 다른 곳에서 나올 구멍이 그만큼 없다는 얘기입니다. 딴 데 어디서 심어서 거둘 수가 없는 곡식입니다. 우리 나락이라는 게.

 


2. 유기농 - 비료와 농약 

쌀 고를 때 유기농인지 아닌지 보시는 분이 많겠지요. 많을 겁니다. 당연히. 비료든 농약이든 안 쓴 것이 좋습니다. 그렇다고 농약 쳐서 농사짓는 것이 나쁘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농약친 쌀 없으면 이미 이 땅은 먹을 게 없어서 몇 번은 난리가 나고 뒤집어지고, 그랬을 겁니다. 농약 쳐서 농사 짓는 분들이 있어서 그 덕에 먹고 살고 있지요. 글자 그대로 그 덕분에 먹고 살고 있는 겁니다

무농약은 농약 없이 길렀다는 표시이고, 유기농은 비료와 농약을 쓰지 않았다는 표시이지요.


화학비료로 기른 채소는 싱거워서 물맛만 난다거나, 조직이 푸석푸석하고 부풀려져 있다거나, 유난히 색이 짙고 번들번들하다거나, 잎이나 줄기의 모양이 엉성하다거나, 이 모든 특징이 골고루 나타난다거나 하는 식이다. 덩치는 크지만 허약하기 이를 데 없어 벌레가 오면 그저 속수무책으로 당한다. 그래서 농약이 필요해지고, 화학비료와 농약은 실과 바늘처럼 사이좋은 친구가 된다.

비료로 키운 농산물은 농약을 치거나 말거나, 맛에 별 차이가 없다. 물 맑고 공기 좋은 곳에서 라면만 먹고 사는 것보다는, 대도시 한복판에서 신선한 유기농 채소를 잔뜩 먹고 사는 쪽이 건강할 것이다. 식물도 마찬가지이다. 그런 점에서 무농약 농산물은 농약을 친 것보다야 좋겠지만, 몸이 아파 건강해져야 하는 사람한테는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 - 윤철호, <스스로 몸을 돌보다>, 2013, 상추쌈.

 

다른 작물도 마찬가지입니다. 벼가 무얼 먹고 자랐나 하는 게 중요해요. 아무리 최고의 신품종 어쩌고저쩌고 해 봐야 비료 주고, 4대강 녹조라떼 물 끌어다가 먹이고 그러면, 형편없는 쌀이 나올 수밖에 없습니다

농업용수로서 4대강 물은. 남한에서 절대적입니다. 이 물 없으면 당장 농사 못짓는 땅이 얼마나 될지 헤아리기 어렵지요. 벼는 자라는 내내 아주 긴 시간을 물에서 보냅니다. 원래 농지 가운데 강가에 있는 땅은 훨씬 값을 더 쳐줍니다. 땅이 비옥하거든요. 물을 대기에도 좋고. 맛있고 건강한 작물이 자랍니다. 수확량도 많고

좋은 땅일수록 놀려서는 안 됩니다. 땅 놀리는 것만큼 큰 죄가 없어요. 농사는 결국 땅을 가꾸는 일입니다. 농부가 땅을 잘 가꿀 수 있도록 돕는 일이, 값 차이가 나더라도 유기농을 골라 먹는 일입니다. 

요즘은 자연재배라는 이름으로 농사를 짓는 분들도 계시지요. 자연재배 하시는 분들은 우선은 따로 퇴비나 거름을 하지 않고 농사를 짓습니다. 봄이네는 따로 거름을 안 할 생각까지는 아직 없습니다만, 공장에서 만들어져 나오는 유기농 인증 제제는 사용량을 줄이고, 가능한 빨리 아예 사용을 하지 않을 계획이에요. 거름은 풀 베고, 가랑잎 긁고, 똥 모으고 그렇게 하고 있는데 이것을 늘려서 쓰고 유기농 제제는 안 쓸려고 합니다.

여튼 벼는 땅에 뿌리를 내려서 필요한 것을 얻고, 늘 물을 많이 필요로 하지요. 햇빛과 바람 또한 없어서는 안 됩니다. 벼는 꽃이 필 때, 바람 좋은 날을 고릅니다. 벼꽃이 피어 있는 시간이 몇 시간 안 되거든요. 자마구가 인다고 하지요. 벼꽃을 자마구라고 합니다. 벼꽃 사진이라고 찍은 사진은 대개 벼꽃이 다 피고 나서 꽃잎이 닫힌 다음의 사진입니다. 꽃이 열려 있는 시간은 정말 짧으니까요. 그걸 들이대고 보고 있지 않으면 그냥 꽃가루 매달린 것을 보고 꽃이라고 생각하게 됩니다

벼꽃 필 때 날씨가 무척 중요해요. 자마구가 이는 시기가 처서 무렵입니다. ‘처서에 비가 오면 십리 안 곡식 천 섬이 준다.’고 하는 말이 이 때문이지요. 바람과 볕과 다른 모든 것이 마땅할 때에 꽃을 피웁니다. 농사 초보가 저지르는 실수 가운데 하나가 벼꽃 필 때 논에 들어가는 겁니다. 원래 벼꽃 필 때에는 논두렁도 안 밟는다고 하거든요. 이렇게 땅과 물과 바람과 날씨에 따라 벼가 자라는 것이 달라집니다. 그냥 단순히 풍작이니 흉작이니 하는 것뿐만 아니라 쌀알 하나하나가 얼마나 건강하고 맛 좋게 자라는가 하는게 달라집니다. 심지어는 같은 도가리 안에서도 물 드는 쪽 다르고, 물 내는 쪽 달라요. 오랫동안 논을 잘 가꾸면 이런 차이도 점점 줄어들지요.

농사짓는 땅은 그냥 원래부터 그렇게 생겨먹은 게 아닙니다. 그 해에 농사지을 때 무슨 비료를 했나, 무슨 거름을 했나, 이것만으로는 땅도 벼도 금세 바뀌지 않습니다. 한 농부가 수십 년 같은 정성으로 농사를 지어도 어느 도가리는 화수분처럼 나락이 나고, 어느 도가리는 겨우 평작이나 하면 다행입니다. 자식 새끼 키우는 것하고 별로 다르지 않습니다. 물론 농사가 잘 안 되는 도가리에는 이래저래 더 신경이 쓰이기 마련입니다만, 땅을 바꾸기에는 그정도 시간이 짧은 것이기도 하고, 사람 힘으로는 안 되는 것도 있고 그렇습니다

그래도 한 해 한 해 있는 힘껏 할 수 있는 것을 합니다. 그렇게 시간이 쌓여서 농지가 만들어 집니다. 벼가 먹고 자라는 것은 그 해에 넣어 준 비료, 거름 뭐 이것만 먹고 자라는 게 아니거든요. 땅 그 자체를 받아 올리는 것이니, 제법 시간이 걸리고, 땅이 어떤 상태인가 하는 것이 무척 중요해 집니다

그러니까 나락이 달라지는 가장 큰 까닭은 어떤 땅에서 어떻게 자랐나 하는 겁니다. 제가 생각하기에는 그렇습니다. 다른 것은 그 다음 문제입니다. 벼가 좋지 않게 자라면 그 무엇으로도 이 문제를 해결하거나 메꿀 수 없거든요. 위에 말한 쌀 고르는 조건들 가운데 벼가 어떻게 자랐는지에 대해서 그나마 조금이라도 알려 주는 것이 유기농 여부입니다. 사실 소비자가 더 이상 알기는 어려워요. 그리고 이것은 소비자가 무어라 이야기를 꺼낼 문제가 아니기도 하고요. 농약이나 비료나 농부들이 안 쓰려고 하고 있으니까요. 그렇게 될 겁니다.



3. 쌀 - 물 - 밥

물을 얼마나 잡을 것인가는 밥 할 때에 가장 큰 변수라고 할 수 있지요. 물기를 조절하는 게 크게 세 번입니다. 첫번째는 나락 타작할 때. 나락이 충분히 익고 얼마나 말랐을 때 벨 것인가. 밀은 벼보다 훨씬 더 말린 다음에 벱니다. 벼도 적당히 말랐을 때 베야 하지요. 두 번째는 베고 나서 나락을 널어 말리는 때입니다. 봄이네는 나락이든 밀이든 베고 나면 볕에 널어 말립니다. 대개는 건조기에 들어가지요. 역시 같은 쌀이라면 볕과 바람에 말리는 쪽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그게 자연스러우니까요. 나락을 말리면서 시간마다 당그래질을 하는데요. 그러면서 나락을 하나씩 씹어 먹습니다. 잘 말랐는지 가늠하는 것이지요. 그 다음 세 번째가 밥할 때 밥물 맞추는 것이구요.

물을 많이 먹는 쌀이 있습니다. 요즘은 대규모 RPC에서 수분율을 맞추니까요. 쌀이 말랐다 아니다 얘기할 것이 별로 없기는 합니다만, 봄이네처럼 볕에 말리면 집집마다 말리는 정도가 다르게 마련입니다. 누구는 진밥 좋아하고, 누구는 된밥 좋아하듯이요. 물론 너무 말리면 쌀이 딱딱해지고, 너무 덜 말리면 무르고 벌레가 쉽게 납니다. 다들 적당하게 말립니다.



4. 햅쌀, 갓 찧은 쌀

요즘은 마트에서든 어디든 도정한 지 한 달 넘은 쌀은 사기 어렵습니다. 그런 쌀은 가격이 확 내려가지요. 그만큼 쌀은 겨를 벗기면 그때부터 맛이 변하기 시작합니다. 금방 겨를 벗겨냈을 때, 그 때 맛이 있어요. 한때는 도정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쌀을 사는 게 쉽지 않아서 살 때마다 도정 날짜를 보고는 했습니다만, 지금은 도정날짜가 별로 오래된 것이 없으니까요. 쌀을 살 때 얼마나 작은 포장을 사서 집에 두고 먹는 기간을 줄이는가 하는게 더 중요해졌습니다. 그도 아니면 일본처럼 현미를 사서 밥할 때마다 쌀을 깎아서 밥을 하면 더 좋고요.집에서 커피콩 갈아 드시거나, 잎차 내려서 드시는 것도 좋지만, 끼니 때 쌀을 깎아 먹으면 밥상 앞에 앉는 게 즐거워지지요. 커피콩 가는 것보다 간단합니다.

아무리 도정 날짜가 얼마 지나지 않은 것이라고 해도, 더 중요한 것은 햅쌀이냐 하는 겁니다. 타작한 지 얼마나 되었나 하는 게 밥맛이 정말 다르지요. 철원 동송농협의 오대쌀이 꽤 오래전부터 자리를 잡았는데, 제가 알기로는 쌀을 보관하고 관리하는 것부터 무척 신경을 썼다고 알고 있습니다. 오대쌀이 유명해질 무렵만 하더라도 쌀 보관에까지 그렇게 신경 쓰는 곳은 많지 않았거든요. 요즘 대형 RPC들은 다들 어느 정도 수준을 유지하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만, 그렇게 보관하는 것에 아무리 신경을 쓴다고 해도 햅쌀은 햅쌀이죠. 사람이라는 게, 아무리 보관을 잘 해서 뭐 이런저런 영양 수치를 비교해 봤더니 햅쌀이나 진배없더라. 해도 한여름 땡볕에 먹는 쌀을 햅쌀처럼 맛있게 먹을 수는 없어요. 햅쌀은 가을에 맛있는 겁니다. 가을이 오면 햅쌀을 기다리고요. 물론 쌀을 보관해 두는 곳이 더웠다가 추웠다가, 습했다가 뭐 그래서는 안 됩니다만.



5. 도정

쌀을 도정하는 것에 관해서라면 지금은 날짜만 봅니다. 언제 도정했냐 이거죠. 헌데 어떻게 도정했냐 하는 것도 큰 차이가 납니다. 사실 제가 이 차이를 직접 겪어본 것은 아니니까, 그렇다고 합니다. 방앗간에서 갓 찧은 쌀을 자루에 담아서 안으면 따뜻합니다. 나락 냄새도 나고요. 쌀 찧는 것이 아주 순식간이에요. 가마니로 수십 가마니라고 해도 시간이 얼마 걸리지 않습니다. 제가 한 70-80kg 쌀을 찧으려고 하면 십분 안팎으로 모든 과정이 끝납니다. 그만큼 쌀이 스트레스를 받아요. 열을 내면서 겉껍질을 마구 깎아내는 것이니까요.

우리나라에서는 제가 아직 보지 못했는데요. 일본에서 쓰는 정미기로 순환식 정미기가 있어요. 쌀 20kg 찧는 데에 몇 시간이 걸립니다. 봄이네가 사고 싶어서 벼르고 있는 농기구 1순위에 드는 것입니다. 가장 작은 것은 백만원이 조금 넘는 것으로도 있으니까 어서어서 돈을 모으면 멀지 않아서 살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게다가 요즘 환율도 그렇고….

이 기계는 오랫동안 천천히 깎아내는 것이어서 쌀이 별로 열을 받지 않습니다. 일본의 쌀집에서는 이것을 놓고 그때 그때 쌀을 깎아 주는 곳이 적지 않아요. 맛이 아주 다르다고 합니다. 봄이네 밀가루를 드시는 분 가운데 일본에 계신 분이 몇 분 계시니까 어쨌든 이 블로그에 들어 오시는 분 가운데 일본에서 지내는 분이 있으시겠죠. 봄이네가 이 기계에 대해서 궁금한 것이 몇 가지 있는데, 아직 모르는 것이 몇 가지 있어요. 혹여 아시는 분이 있으시다면 알려주십사 부탁드리고 싶습니다. 궁금한 것은

순환식 정미기 가운데 현미만 깎는 것이 있고, 나락째 넣을 수 있는 것이 있다는데 이 둘을 어떻게 구별하는지,

20kg깎는 데 두어 시간 걸린다는데, 기계를 쉬지 않고 작동시킬 수 있는 시간이 얼마나 되는지,

돌 골라내는 기계가 따로 필요한 것은 아닌지.

부속들은 얼마나 자주 갈아야 하는지, 그러니까 시간을 따져서나 도정한 쌀의 양을 따져서나 유지하는 데에

얼마나 비용이 들어가는지,

그리고 부속만 한국에서 구입하는 것이 가능한지, 자가 수리가 가능한지. 뭐 이런 것들이에요.

얼른 이 기계를 장만해서 도정기가 달라지면 밥맛이 어떻게 달라지는지 맛을 보고 싶습니다만.



6. 현미와 백미

현미와 백미의 영양 차이는 아주 큽니다. 현미밥을 먹는다는 것은 어지간히 비싸고 좋은 영양제 먹는 것보다 낫습니다. 끼니마다 먹는 것이니까요. 현미와 백미도 언제 자세히 적어보겠어요. 봄이네는 현미 먹을 때는 현미만 먹고 백미 먹을 때는 백미만 먹고 그런 식이에요. 섞어 먹는 것보다는 이쪽이 더 맛있더라구요.

기본적으로는 현미일 때 벌레가 더 많이 생깁니다. 하지만 산화된다고 하지요. 산화는 공기와 닿는 쪽부터 일어납니다. 속은 멀쩡합니다. 벌레가 생긴 것이 아니라면, 현미로 보관을 하다가 먹을 때 겉을 좀 깎아내고 백미로 만들어서 먹으면 더 신선합니다. 일본에서는 가정용 정미기가 꽤 보급되어 있는데, 현미를 깎는 기계입니다. 쌀집에서 현미로 사다가 밥할 때 백미로 깎아서 먹는 겁니다. 껍질 까 놓고 파는 호두는 영양이고 뭐고 안 사먹는 게 좋습니다. 견과류는 껍질이 딱딱한 까닭이 속 알맹이가 그만큼 빨리 상하기 때문입니다. 현미는 호두보다야 덜하기는 한데, 현미로 사서 먹을 때 백미로 깎아 먹으면 그 자리에서 호두 껍질을 까 먹는 것과 비슷한 셈이 되지요. 물론 백미의 맛과 현미의 맛은 다릅니다. 백미가 맛있는 것은 아니에요. 요즘 사람들 입맛이 백미에 길들여져 있는 것 뿐입니다. 백미를 포함해서 밀가루와 설탕 같은 것을 하얗게 깎아 먹는 것은 장기간 보관을 위한 조치일 뿐입니다. 대규모·장거리 운송, 장기간 보관 이런 것을 위해서 말이지요. 이것 덕분에 곡식 가격을 후려칠 수 있게 됩니다. 도시에서 먹는 음식이 값싸게 대량으로 유통될 수 있는 첫 번째 단추가 흰 곡식입니다. 밀과 쌀과 설탕을 희게 깎아 먹는 것은 예전에도 있었던 일이기는 합니다만, 기계를 써서 빠른 시간안에 대량으로 해 내기 시작한 까닭은 맛 때문이 아니었던 것이죠.



7. 밥솥

품종은 일본 쌀을 선택합니다만, 그래도 역시 일본 사람의 입맛은 한국 사람하고는 다르지요. 밥솥은 한국 것이 한국 사람 입맛에 더 맞춰져 있는 것 같습니다. 고시히카리나 밀키퀸 같은 것은 아주 맛있는 품종이라고 일본에서 대단한 인기를 끌고, 그 여파로 한국에 들어옵니다만, 일본 밥솥은 안 들어옵니다. 심지어 한국에서 초밥집을 하시는 분들도 한국 밥솥이 낫다고 하시는 분들을 여럿 보았으니까요.

어쨌든 가장 많이 쓰는 밥솥이 전기압력밥솥일 겁니다. 그 중에서도 쿠쿠. 아닌가요. 쿠첸이나 뭐 다른 것도 쓰시겠지만. 여튼 요즘 나오는 쿠쿠는 점점 예전만 못하다라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툭하면 고장나고, 패킹은 빛의 속도로 갈아야 하는 소모품이고. 쿠쿠 욕하려고 쓰는 건 아니고... 아직 뾰족한 대안이 없다는 게 함정.

품종 얘기할 때도 밥맛을 찾는 경향이 어느 한쪽으로, 결국은 좋아하는 밥맛이 다 비슷한 쪽으로 흘러간다고 적었습니다만, 압력밥솥도 비슷한 것 같아요. 이게 쌀을 꾹꾹 눌러서는 품종이나 뭐나, 이런 거 때문에 생기는 차이를 드러나지 않게 만드는 거죠. 확실히 냄비 밥이나 가마솥 밥은 밥을 지었을 때 쌀의 상태를 고스란히 드러내는 쪽입니다. 쌀이 안 좋으면 안 좋은 대로, 쌀이 좋을 때는 아, 그렇게 황홀할 수가 없어요. 집에서 아내가 가스렌지에 올라가는 작은 무쇠솥에 밥을 종종 합니다. 숭늉도 먹을 수 있고 아이들도 좋아하거든요. 저도 그렇고. 그러니까 같은 쌀로 압력솥에 하기도 하고, 무쇠솥을 쓰기도 하는데, 쌀이 좋을 때는 무쇠솥밥이 더 좋고, 쌀이 안 좋을 때는 무쇠솥밥이 더 안 좋아요. 여하튼 그렇습니다. 그냥 이 정도의 경험이에요. 덧붙이자면 가스렌지에 솥이든 냄비든 올려서 밥 하는 것이 전기밥솥에 견주어서 그리 번거롭지는 않다는 사실. 그리고 밥을 할 때 제대로만 할 수 있다면 (다른 음식을 할 때에도 비슷한데) 큰 가마솥에서 장작 때고 밥을 한번에 많이 한 것이 정말 맛있지요.



8. 밥 짓기

쌀 씻고, 불리고, 앉히고, 밥물 맞추고, 불 조절하고, 뜸들이고 이런 것은 집집마다 내려온 가풍이 있겠지요. 그러니 이것은 제가 따로 할 얘기가 없습니다. 부디 아이들한테도 잘 물려 주시길 바랄 뿐. 도시에서 살면서 어려워 하는 것이 끼니마다 밥을 짓는 것입니다만, 이것 만큼은 어떻게든 방법을 짜 내서라도 끼니마다 밥을 해 보세요. 몸에 익히는 게 아주 어려운 축에 드는 일은 아니거든요. 어느 정도 하다보면 보온 밥솥에 들어있던 밥을 꺼내 먹는 짓을 못하게 되는 게 금방이에요. 그리고 혹시나 해서 덧붙이자면 밥을 많이 해서 조금씩 나누어 담아서는 얼려 두었다가, 먹을 때 전자렌지에 돌리면 괜찮다고 하는 얘기가 인터넷에 떠돌기도 하는데요. 절대 해서는 안 되는 일입니다.


우선 생각나는 것들은 여기까지이네요. 그래도 이 정도를 염두에 둔다면 쌀을 고를 때 별로 어렵지는 않을 거 같습니다.

그리고 밥 맛의 조건, 가장 중요한 것은

배가 고플 때 먹어야 한다는 것이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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