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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아이

아침 학교 가는 길.

haeum_se 2015. 4. 28. 23:08



조금 일찍 일어난 날.

조금 일찍 밥을 먹고, 옷을 입고,

그런 날에는 집부터 학교까지 걸어간다.

아이들 걸음으로 삼사십분쯤.

한 시간 일찍 나서면 한 시간 동안 걷는다.

시간이 여유로운만큼 조금씩 더 천천히, 돌아서 간다.



봄이는 일찍 학교갈 준비를 마쳤다 싶으면,

슬쩍 물어본다.

오늘 걸어가?



비오는 날이라면 더욱.

좋아라 하는 것.

장화 신고 비옷 입고 우산 들고.

오늘은 집을 나서는 때에 비가 그쳤지만.

입고 신고 한 것을 벗을 리는 없지.

처음으로 공룡 비옷을 입은 강이도 비옷을 마음에 들어 한다.



학교까지 걸어가는 길은 다섯 가지쯤.

대나무길, 염소길, 상신길...

대나무길은 가장 멀리 돌아가는 길.

그만큼 봄이, 동동이도 좋아한다.

강이도.



- 백로다!

- 백로가 나무 껍데기를 암! 물고 날아갔어.

- 백로 사냥한다.


= 여러 가지 새소리가 들려왔어.

- 사냥하는 거 아니야?

= (작은) 새를 노리고 있는 거 아니야? 박새 노리거나 참새 노리는 거겠지.

(강이를 안고 찍은 것이라 흔들림, 뭐 다른 사진들도 다 그렇기는 하지만.)



집에서 나설 때는 그래도 넉넉히 나왔다 싶어도,

학교 가는 길 내내 내가 하는 말은 

'봄! 어서 가자. 동동! 가자. 얼른 와.' 이런 것.

요즘은 마을 밭마다 새로 갈고 씨 뿌린 것이

싹이 나는 것도 많고,

모종을 옮겨 놓은 것도 많고.

이런 것들이 하루하루 다르게 자라니까,

날마다, 볼 때마다 이게 뭐냐고 묻는다.

특히, 동동이.



사진에는 잘 나오지 않았지만, 고사리밭.

봄이는 한참을 들여다보고,

나 고사리 잘 꺾는데 그러면서 뭐라뭐라 했다. 

그런데 내가 자기 얘기를 듣는둥 마는둥 했더니

한손을 주머니에 찔러 넣고 우산을 탁탁 짚으면서

총총히 가버림.



시골이지만,

걷는 사람은 많지 않다.

봄이가 다니는 초등학교는 전교생이 백명쯤 되는데,

걸어서 학교에 다니는 아이는 얼마 없다.

봄이, 동동이는 그나마 많이 걷는 편.

학교까지 걸을 수 있는 것은 집이 학교에서 가깝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집 앞에서 아주 잠깐 찻길 옆을 걷고 나면,

그 다음부터는 차가 (다니기는 하지만) 거의 없는

골목길로 학교까지 갈 수 있어서이다.



친구 집이 아무리 멀어도, 

봄이 나이 때에는 어디든 함께 걸어다니고 저들끼리 몰려다니며

놀고 그럴 수 있을 텐데.

어쨌거나 자동차가 그 모든 것을 불가능하게 한다.



지난 주였나. 날이 맑은 날.

이만큼이 찻길 옆을 걷는 곳.

자동차는 아주 빠르다.



개, 고양이, 염소, 소 따위.

네발짐승이 보이면 일단 가까이 간다.

개는 몇 집 없고, 자주 보는 것은 고양이.

이 고양이는 자기 집 마당에서 자다가 

봄이하고, 동동이하고 깨워서 좀 썽이 났다.

대나무길이든 염소길이든 나중에 길이 만나서

염소 기르는 집 앞을 지나간다.

꼭 한 번씩은 염소 우리를 들여다보고 그랬는데,

얼마 전에 그 집이 염소를 다 팔았다.

염소 우리는 창고로 쓰고 있다. 그래서 염소길은 이제 

염소 없는 염소길이 되었다. 사실은 중간쯤에

염소 키우는 다른 집이 있기는 하지만, 그 집 염소는

들여다 볼 구멍이 없으니,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



봄이는 학교를, 동동이는 유치원을. 좋아한다.

지금까지는 분명히 그렇다.

게다가 동동이는 자기 교실 위층에 누나가 있어서 더 좋다.

그러니, 아침에 학교 가는 길도 대개는 즐거움.

누나가 앞에 서고, 동동이가 따라간다.



학교에 닿기 전에 한 번. 찻길을 건넌다.

강이를 외가에 맡기고는 그 즈음까지 아이들과 걷는다.

지금도 분명하게 기억나는 장면이 하나 있다.

어릴 때 내가 살던 곳은 서울 변두리 아주 허름한 동네였는데,

친구들과 늘 길에서 놀았다.

어느 날 우리가 놀던 길로 자동차가 지나갔다.

친구들과 나는 한줄로 줄줄이 손을 잡고 벽에 붙어 서서

휘둥그레진 눈으로 그 검고 빛나는 무쇠자동차가 

바퀴를 굴려 지나가는 것을 바라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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