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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2월, 날은 따뜻합니다. 올해도 어김없이 별다른 사연을 달아 매고 밀싹이 올라옵니다. 11월에 밀씨를 뿌리는데, 그 무렵에 유난히 비가 많이 왔어요. 밀이나 보리 뿌릴 때 비가 많아서 논에 물이 들면 씨앗들이 다 못쓰게 됩니다. 물에 잠긴 채 며칠 있으면 '다 녹아삐리'거든요. 언젠가 저희 논이 얼그미 논이라는 이야기를 했지요. 얼그미 논이라는 게 바닥이 얼금얼금해서 물이 잘 빠지는 논이라는 말입니다. 그러니 물을 가둬서 논 농사 짓기에는 안 좋은데, 어쩌다 이렇게 밀 농사 지을 때 좋은 구석도 있는 거지요.

그렇게 말을 들은 이후로는 비가 와도 별 걱정없이 밀을 뿌렸는데, 올해는 장마처럼 비가 내리니 씨 뿌릴 하루, 날 잡기가 어려웠습니다. 겨우 씨를 뿌리긴 했지만, 논흙이 아주 진흙덩이가 되어서는 제대로 갈지도 못하고, 그러고도 며칠 비가 왔습니다.




1주일 지나 논에 갔는데, 싹은 안 보이고, 채 덮이지 않은 밀알만 나뒹굽니다. 게다가 해마다 씨 뿌리는 것은 아내가 해 왔는데, 올해는 사정이 있어서 제가 씨 뿌리는 것까지 처음으로 도맡아 했거든요. 저나 아내나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밀 얘기는 안 하면서) 며칠을 보냈죠. 서너 해 전에 밀을 뿌렸다가 싹이 나질 않아서 다시 파종했던 해, 그때 생각이 안 날 수가 없었습니다. 게다가 올해는 새로 뿌릴 씨도 모자랐으니까. 그나마 다행인 것은 어데 먹을 것이 또 있는지 비둘기나 꿩이 우리 논에 오지는 않는다는 것. 조금만 더 기다려보자.




그렇게 며칠이 더 지나서 고맙게도 싹이 났습니다. 가슴 졸인 것은 이제는 지나가버린 일. 싹 난 것만 보고도 밀가루 빻아서 빵 굽고, 국수 뽑고 할 생각이 납니다. 그래도 입 밖으로 꺼내지는 않아요. 그랬다가는 설레발친다고 한 소리 들을 겁니다.




밀싹 난 것을 보고는 밭에 올라옵니다. 정말 날이 '따수운' 게 겨울이 되어서도 밭둑에 산국인지 뭔지 꽃이 여전해요. 해마다 이랬던 것인지 모르겠지만. (당최 먹을 것 말고는 눈 여겨 보는 게 있어야 말이지요.)




밭에는 마늘이며 양파 따위가 자라고 있습니다. 모두들 적당히 싹을 내밀고 겨울을 버틸 준비를 하지요. 마늘은 몇 해 씨를 받아서 심었더니 해가 갈수록 맛이 더 아릿하고 향이 좋아집니다. 알은 단단해서 오래 두어도 물러지지 않구요. 




가을에 콩이며 깨, 팥 갈무리를 하고 나면, 봄 농사 시작할 때나 마찬가지로 다시 밭 갈고, 씨 뿌리고 그렇게 되지요. 밭에는 마늘, 양파말고도 꽤 여럿 푸른 것들이 있습니다. 아무래도 따뜻한 동네이니까요. 겨울이라고는 해도 비어 있지 않은 논밭이 흔하기는 합니다. 예전만큼은 아니어도요. 사실 처음 악양에 내려왔던 8년 전에는 겨울에 빈 논이 거의 없었어요. 밀이든 보리든 어디든 새파란 들판이었습니다. 그러던 것이 보리 수매를 하지 않고, 밀도 어디 내 놓을 데가 마땅치 않아지면서 하나둘 빈 논이 늘고, 아예 논에다가 감나무나 매실나무를 심어 버리는 곳도 많아졌어요. 젊은 사람이 많고 귀농한 사람들도 많이 사는 동네라 해도, 할매 할배들 기력이 달려서 겨울 농사는 손을 놓는 집도 하나둘 늘어나구요.





한겨울에 싹나는 이야기만 줄줄입니다만, 찬바람 맞으면서 보는 것이니 봄에 새싹 나는 거 보는 것하고는 또 다른 기분입니다. 완두콩 싹은 덩굴손 오무리고 나 있는 것이 역시 완두콩 맛처럼 말캉하고 달큰한 느낌이에요. 완두콩은 해마다 장에서 씨를 사서 심다가 씨를 받아서 심은 건 처음이에요. 그게 아주 잘 났습니다. 이 빠진 자리도 없고, 비실한 싹도 없고요. 완두콩 다섯 해 가운데 싹 모양새로는 가장 좋지 싶습니다. 




완두콩 씨는 직접 씨를 받기가 어려운 종자라고 책에 나와요. 책으로 쓰여 있는 것은 몇 권을 봤는데, 다 그렇게 적혀 있습니다만. 실제로는 그렇게 어렵지는 않았어요. 지난 해가 유난히 씨를 받기에 좋았을 수도 있었겠지요. 벌레가 많이 생기기는 했지만. 씨할 것이 아주 많지는 않으니까 냉장고에 넣을 수도 있고, 잘 말려서 벌레가 들어가지 못할 정도로 포장만 해도 되지 않을까 싶고요.




그러나, 사진을 보시면. 날이 따뜻해서인가, 풀싹도 만만치 않다는...






부추며, 배추도 끼니 때 찬거리 하기 좋을 만큼 자라고 있구요. 그리고 시금치. 역시 이 맘 때 남새로 시금치를 빼 놓을 수는 없지요. 원래는 무밭이었던 자리였는데, 지난 가을에 새롭게 맞이한 벌레들 덕분에 무밭이 아주 싹 갈아놓은 땅처럼 휑해졌지요. 아무것도 남지 않았어요. 그러니까 무 대신 시금치. 막내는 아직 두 돌이 되지 않았는데, 갓 뽑아다가 무친 시금치를 쫑쫑 썰어서 밥하고 비벼 주는 걸 좋아합니다. 한 그릇 쉬지도 않고 먹고는 먼저 밥상에서 일어나요. 





시금치가 겨울 채소로 자연스레 떠오르는 것이라면, 상추는 내려와 살면서 완전히 새롭게 발견한 겨울 채소. 많이 나는 것으로야 초여름이고, 그때는 집집이 텃밭마다 몇 포기 심지 않은 것이어도 쏟아져 나오는 상추를 어쩌지 못해서 무쳐 먹거나 국도 끓여 먹고 하지만. 맛을 보자면 지금 이 때가 더 낫고, 조금 더 기다렸다가 겨울을 나고 봄동 솎을 무렵에 먹는 상추는 그 무엇에 견주어도 아쉬울 것 없는 '한맛'이 나는 푸성귀예요. 구할 길이 있다면 꼭 먹어 봐야 하는 것. 





귀퉁이 비닐집에 심어놓은 과일 나무 4가지. 한라봉. 금귤. 귤. 레몬. 한라봉은 작은 나무에 유난히 큰 열매 하나가 달렸고, 금귤은 그래도 여럿. 귤은 아직 달린 것이 없고요. 이 나무들이 자리를 잡아 잘 크게 될지는 몇 해 더 두고 봐야겠지요. 과일나무는 한두 나무씩 아이들 먹일 것으로 심었어요. 이제 조금 더 크면 자기들끼리 와서 밭일도 하고, 과일도 따먹고 하겠지요. 




여하튼 그 중에서도 레몬나무는 지금 밭에서 자라는 모든 것 가운데, 가장 위태로운 녀석입니다. 작년 겨울을 못 넘기나 싶었는데, 용케 한 해를 버티고 두 번째 겨울이에요. 다만 작년보다 더 앙상한 꼴로 겨울맞이를 한다는 것, 짚으로 싸 놓기라도 해야겠습니다.





반가운 나무. 유자.

저희 밭에서 자라는 유자나무가. 그 때의 그 남해. 그 유자 만큼이 될지 어떨지 

모르겠습니다만. 이미 유자차를 내지 못 한 것이 몇 년 되었는데도,

봄이네에게 넌지시 자주 물어오시는 것도, 또 스스로 가장 기다리는 것도 

겨울 유자차입니다. 건강하게 자라고 있어요. 몇 해 지나지 않아 열매도 잘 맺을 겁니다.


++



그리고. 긴 이야기 뒤에 함께 하는.

마음으로 꾹꾹 눌러서 더 하는 이야기.

상추쌈 출판사의 네 번째 책이에요.

2013년 1월에 첫 책을 내고, 

일 년에 한 권쯤. 그만큼입니다.


구례에 사는 이웃 '지리산닷컴'의 권산 이장님과 그 아들이 저자예요.

2013년. 지리산닷컴에는 몇 통의 편지가 올라왔습니다.

군대에 간 아들에게 보내는

지리산닷컴 이장의 편지였지요.

처음의 글들. 사진과 함께 웹에 올라온 버전.

http://www.jirisan.com/index.php?mid=mountain&page=2&document_srl=70511

http://www.jirisan.com/index.php?mid=mountain&page=2&document_srl=72756


아내가 먼저 글을 알아보았습니다.

시골에 내려와 살면서 적어내는 그의 글힘은 대단한 것.으로 느끼고 있었는데.

그 중에서도 단연 백미였지요.

아마도 저 글들은 아들이 군대에 있는 동안 줄곧 이어질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책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그렇게 해서 편지이자 원고이자 편지인. 글들이 나왔습니다.

아들은 군대 안에서 아빠의 편지를 곱씹고는 툭툭 그 안에서 지내는

일상을 적고, 그림을 그렸구요.


나와 식구, 우리네 식구들이란, 그 사이. 다들 각별한 마음은 있으나, 

서로 말하지 못하는 것이 많지요.

게다가 아빠와 아들 사이란 그 중에서도 더더욱 서먹서먹합니다.

어쩌면 군대라는 시기는, 그것을 넘어설 수 있는

마음의 준비가 저절로, 넘치듯 이루어지는 시기. 거의 유일하죠.

이때가 지나면, 없어요. 결혼이 있기는 하지만, 그때는 이미 아들이 너무 

어른이 된 다음이구요.



또, 젊은 청년들이 세상에 나가기 전에

한번은 꼭 들어볼 만한 이야기들이 있었어요.

이를테면, 관례를 치르는 사내에게.

나와 식구와 사회에 대해서 

아버지가 할 수 있는 중심 한가운데의 이야기.

그런 것이 편지로 쓰여졌지요.

흔한 '희망고문' 따위나 자기계발을 독려하는

그런 류의 이야기가 아니었습니다.

적당히 듣기 좋은 말로 포장되거나,

주저되는 대목들을 슬쩍 뒤로 미루는 법 없이,

사람을 아주 불편하게 하는 글이었습니다.

물론 권산의 글이 늘 그렇듯, 

어느 대목이든 유머가 있어요.

즐겁고도 불편한 글.


아래에 책과 또 상추쌈에 대해서.

지리산닷컴에 정리해 놓은 글 링크가 있습니다.

링크가 많고, 결국은 책 한 권 사 보시라는 이야기가 됩니다만.

그만큼을 추스리기까지, 충분히 읽어볼 만할 

정도로 줄인 것입니다.

길고 긴. 오랜만의 포스팅은 여기까지.


한 번뿐인 삶 YOLO – 출판사 이야기와 공동 필자의 진심


한 번뿐인 삶 YOLO - 작가 속마음


한 번뿐인 삶 YOLO - 보도자료

http://www.jirisan.com/mountain/85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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