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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머와 아름다움

지난 달.

haeum_se 2015. 12. 15. 22:33



파장이었다. 문을 닫은 가게들이 더 많았다. 환한 등불이 걸린 가겟집 주인들은 

길가로 나온 물건들을 상자에 담고 있거나, 커다란 천막을 펼쳐서 뒤집어 씌우거나,

혹은 의자에 앉아 띄엄띄엄 지나가는 사람들을 하나씩 빤히 쳐다보곤 했다.

어릴 적 심부름 하느라 콩나물 한 봉지, 파 한 단, 감자 몇 개, 두부 한 모 따위를

사 나르던 채소전과 닮은 가게 앞에서, 오랜만에 익숙하고도 편안했다.가.

형광등 아래 철 모른 채 새파랗고 새빨갛고 반짝이는 피망이며, 호박이며,

가지며, 오이들을 한참이나 낯 모르는 손님 대하듯 쳐다 보았다.





집으로 오는 길에 아이들은 잠이 들었다. 지인의 결혼식이 있었고,

진주 공설운동장에서는 갖가지 천막과 장사와 전시장이 버무려진

주제를 알기 어려운 짬뽕의 축제가 있었다.

평소에 무언가를 사 주는 일이 거의 없던 나와 아내는 

하룻동안 제법 여러 가지를 아이들 품에 안겼다.

그래봤자 딸기나 귤을 급속냉동시킨 과자나 

저 멀리 페루에서 온 유랑악단의 능숙한 아저씨가 건네는

새 지저귀는 소리가 나는 물피리 따위 정도였지만.

그래도 다행히 세 아이는 모두 그 페루 아저씨들의

힘겹지 않아 보이는 춤과 피리 공연을 좋아했다.

그렇게 축제장을 빠져나와서 저녁을 먹었다.

네 발로 엉금엉금 기어오르는 자세가 저절로 나올 법한 계단,

오래된 식당 이층에서 오랫동안 그대로였다는 육회비빔밥.

마트는 이제 들어서기만 해도 지쳐버려서 잘 찾지 않는데,

다행히 밥집이 있는 자리는, 

오래된 도시의 그에 못지 않게 오래된 시장 한복판이었다.

불 밝힌 가게가 몇 남지 않은 도시의 시장을 휘적거리고 한 바퀴를 돌아

장을 보고, 집으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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