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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계마을

구례 동아식당

haeum_se 2010. 1. 15. 22:24


그동안 쌀 팔고, 유자차, 배쨈, 효소 팔아서 번 돈으로다가
밥 한 끼 사 먹고 왔다. 아정의 블로그를 통해서나, 또 이곳을 직접 찾아주거나 했던
몇몇 마음씨 착한 사람들이 그저 사진 몇 장, 글 몇 줄만 보고
이것저것 사 주고, 응원해 준 덕분이다.
그 중 누구든 악양에 들르게 된다면, 더 기껍고도 즐거운 밥 한 끼를 하겠지만,
아직은 없으니까, 우리끼리라도 맛있는 것을 먹어야지.
맛있는 거 먹고, 기분 좋아지면, 그 많은 사람들한테
고마운 마음이 얼마나 더 무럭무럭 피어날까.
기껏해야 일년에 몇 번 있을 점빵이지만, 이제 곧 마감도 얼마 남지 않았으니,
한번은 꼭 할 일이었다. 방바닥이 궁뎅이 덕 본다는 추위도 조금 누그러졌겠다,
그래서 식구들 모두 나섰다. 사는 곳은 경남 하동 악양인데, 장 보러 가거나,
특히 외식! 같은 것을 할 때에는 자꾸 전라도 구례로 가게된다.
하동 읍내보다 10분은 더 멀지만, 어쩔 수 없다. 경상도와 전라도를 오가는
버스 운전사 아저씨도 그러더라. 아무리 배고파도 전라도로 넘어가기 전에는
밥 안 먹는다고.





구례 읍내, 하나로마트 옆에 있는 동아식당. 알려질 만큼 알려진 곳.
예전 서울 살 때는 다른 블로그를 찾는 가장 큰 이유 가운데 하나가, 맛있는 밥집을 찾기 위해서였다. __;;
이 글을 보는 사람 가운데 구례나 하동에서 밥집 찾는 사람이 있을까 싶기는 하지만,
그래도 권할 만한 곳.
밑반찬 나오는데, 추운 날이어서 그랬는지, 따뜻한 두부를 내어주셨다.
시금치는 오늘 아침에라도 캔 것 마냥 싱싱하고, 달고, 고소했고,
김치 위편에 있는 건 서대 새끼를 말려서 무쳐낸 것인데, 이것 또한 밥 나오기 전에 벌써 두 접시.




봄이가 좋아하는 것, 시금치. 다른 것은 두부만 조금 먹고, 시금치를 혼자서 한 접시는 먹은 듯.
이제 슬슬, 방이 없어도 밥 한 끼 먹기에 많이 힘들지는 않다. 그 동안 이 식당에 오기가 힘들었던 게
방이 없다는 것도 그 이유였는데, 이제 괜찮겠다.




반찬을 한 가지 더 해 주셨다. 달걀을 익힌 것이었는데, 기름을 두르지 않고, 그대로 찌듯이 익힌 것 같았다.
후라이보다 훨씬 담백하다, 앞으로 집에서 이렇게 해 먹어야지.




부엌은 작고, 그릇도 얼마 되지 않는다. 단촐하고, 오래된 부엌.
테이블이 일곱 개쯤이고, 장날에는 늘 북적거리는 식당이라는데,
달랑 저만한 냄비하고, 그릇만으로도 되는 건지.
마침, 우리가 찾아간 시간은 점심시간이 막 지난 때라 우리 말고 한 테이블밖에 없었다.
아주머니는 천천히 음식을 하셨다. 차근차근, 가끔 우리 식탁을 둘러보고,
봄이를 얼러주시기도 하면서.



우리 식구가 먹을 것.
앞에 있는 것이, 오늘의 주요리. 가오리찜.
불 위에 얹혀진 것은 돼지고기를 숭숭 썰어넣은 김치찌개.




나는 태어나서 가오리찜을 처음 먹었다. 가오리를 살짝 삭혀서 찐 것.
부추(이 근처에서는 정구지, 솔, 소풀 따위로 불린다.)를
함께 내는데, 가오리와 부추를 함께 초장에 찍어서 먹는다.
담백하고, 살짝 삭힌 냄새가 난다. 물론 홍어와 같은 냄새.
가오리 살은 따뜻하고 보들보들하고, 찰랑거린다.
오돌뼈 같은 가시도 오물오물 씹어먹기에 좋다.
가오리는 버릴 게 하나도 없다고 한다. 비어진 접시는 찍지 못 했지만, 정말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







가오리찜에 김치찌개에, 맛난 반찬에, 늦은 점심을 정승 같이 먹은
식구들은 모두들 너무 배가 불렀다. 밥은 결국 두 공기를 남겼다.
'아주머니, 여기 얼마 드리면 돼요?'
'응? 3만원.'
어른 다섯 명이 이만큼 먹고 3만원.

아주머니는 봄이가 가는 것을 보면서 한참 동안 손을 흔들어주셨다.


밥 한 끼 잘 먹고 났더니,
저절로 고마운 사람들 생각이다. 다음번 점빵 열 때는 더 잘해야지. 하는 생각도 들고.



* 이글, 쓰는 사이 '유자병이 한 개 깨졌어요.'라는 문자가 왔다. 물건이 파손되기는 처음.
게다가 유리병이라 치우시다가 다치지나 않으실지 걱정이었다. 밀가루도 주문해 주셨던 분인데,
죄송스러워라. 끙. 다행히 유자 몇 병 담아놓은 것이 있으니, 내일 다시 보내기는 어렵지 않을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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