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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머와 아름다움

늦은 김매기

haeum_se 2011. 8. 28. 03:17

밀가루 팔고 있던 것 가운데 토종밀 밀가루와 밀기울, 밀쌀은 더 이상 남아 있지 않습니다.
금강밀 밀가루만 남아 있어요. 고맙습니다.





아이가, 고마 내가 하까?
팔십 먹어가 내 하까?
읎어, 여 놉 얻을 사람 읎어. 


밀 농사를 짓지 않고, 일찌감치 모내기를 한 논은
이미 이삭이 패고, 꽃이 달렸다.
그런데, 이제서야 논을 매겠다고 시작했으니,늦어도 한참 늦었다.
놉을 얻을 수만 있으면(돈 주고 일꾼을 구할 수만 있으면) 
사람을 여럿 얻어서라도 일을 얼른 끝내고 싶었지만,
이 더위에 이제 논 매는 일에 나서는 사람은 없다.
젊은 사람이 얼마 없는 까닭이다. 좀 젊다 싶으면
다들 제 할 일에  코가 석자다. 게다가 올 여름 지독하게도
비가 긋지 않았던 날씨 탓에 뭐하나 제대로 말려둔 게 없으니
일손은 더 달리고, 놉 얻기는 일찌감치 틀렸다.




김매기 시작하고 한동안 사진기를 들고 가지 못했다.
완전 녹초.
이것은 풀을 매기 전이긴 하지만, 풀이 별로 없는 곳이다.
풀이 좀 났다 싶은 곳은 벼보다 잡초가 더 빽빽한 상황.





매고 나면 이렇게.
워낙에는 지금쯤이면 이렇게 물이 보여서는 안 되는 시기이다.
벼가 새끼도 많이 치고, 잎도 많이 자라
서로 어우러져서 바닥이 잘 보이지 않아야 하는 것이다.
그래야 새로 자라는 잡초도 별로 없고.
그런데 올해는 우리 논 말고도, 이렇게 벼가 잘 자라지 못한 논이 꽤 된다.
이러다 자칫하면 콤바인이 못 들어갈 수도 있게 되는데,
낫 들고 벨 형편도 안 되는 할매할배들은 수확할 방법이 없는 셈.






그래도 논일 하고 있을 때만큼 
마음 편한 순간은 많지 않다.
가만히 앉아서 아무 생각 않겠다고 벼르는 게 힘들지,
무논에서 한발씩 들고나면서 풀을 매면
잡생각 없어지는 것은 순식간이다. 





물풀들이 적당히 어우러진 곳을 들여다보면,
좀 있는 집, 사대부가 돌확이든, 마당 귀퉁이 연못이든
가꾸어놓았을 만한 그림이 나오기도 한다.

한참 늦은 때에 엄청난 양의 풀을 매다보니
논 이웃이든, 마을 사람들이든 지날 때마다 묻고,
얼마나 되었는지 살핀다.
풀을 아예 쪄내다시피 한 덕분에,
잡초 언덕이 서너 개 생겼다. 잘 묵혔다가 거름으로 써야지.




흔히, 우렁이 농법이니, 오리 농법이니 하는 것은 다 잡초를 뭘로 잡느냐 하는 이야기다.
아, 올해 우리 논에도 우렁이를 넣기는 했는데, 금세 비오고 물 넘치고 하면서
우렁이가 제 일을 하지 못 했다.
오리는 간단히 말해서 논에 벼만 기르는 것이 아니고, 오리도 키우는 것이다. 
오리가 잡초를 뜯어 먹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이 녀석들이 돌아다니면서
흙탕물을 만들어서 잡초가 싹이 나지 않게 한다.
그러나, 닭 몇 마리 키우기도 벅차니, 오리는 엄두도 내지 않는다.
그런 비슷한 농법 가운데, 개구리밥 농법도 있고, 쌀겨 농법도 있다.
개구리밥이나 쌀겨나 물에 둥둥 떠서 완전히 덮어버리면
그 밑에 그늘이 져서 잡초 싹이 안 나는 원리다.
어느 것 하나 만만치 않다.
내년부터는 일단 두번이든 세번이든 제때에 직접 손으로 김을 매기로 했다.
그것이 원칙.
다 늦어서 하니, 시간은 시간대로, 일만 더 힘들고. 뭐 그렇다.
(그렇다고 제때에 할 시간이 있었던 것도 아니다...)




어제까지 비 오지 않은 날이 없었는데,
(두 달 조금 넘는 동안, 대엿새쯤?)
다만, 서늘하고 바람 불고 빗방울 떨어지는 것이 
일하기에는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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