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 일찍 일어난 날.조금 일찍 밥을 먹고, 옷을 입고,그런 날에는 집부터 학교까지 걸어간다.아이들 걸음으로 삼사십분쯤.한 시간 일찍 나서면 한 시간 동안 걷는다.시간이 여유로운만큼 조금씩 더 천천히, 돌아서 간다. 봄이는 일찍 학교갈 준비를 마쳤다 싶으면,슬쩍 물어본다.오늘 걸어가? 비오는 날이라면 더욱.좋아라 하는 것.장화 신고 비옷 입고 우산 들고.오늘은 집을 나서는 때에 비가 그쳤지만.입고 신고 한 것을 벗을 리는 없지.처음으로 공룡 비옷을 입은 강이도 비옷을 마음에 들어 한다. 학교까지 걸어가는 길은 다섯 가지쯤.대나무길, 염소길, 상신길...대나무길은 가장 멀리 돌아가는 길.그만큼 봄이, 동동이도 좋아한다.강이도. - 백로다!- 백로가 나무 껍데기를 암! 물고 날아갔어.- 백로 사냥한다. = ..
봄날. 기운 얻어서 손끝 발끝에 힘 주고다시 땅에 나가 일을 하고. 그래야 하는 때는이미 오래전에 지났다.정월 보름이 아주 늦어서, 머슴날 영등날은양력으로 삼월이 지나도 한참 지난 때였다.그래도 그 즈음에는 산에 머위도 나고,봄이는 길섶에서 꽃가지를 꺾어다가 제 신발에 꽂아놓고는 했다. 정월 보름이 지나면 마을 어른들이야 밭에 나가는 날이 잦아지지만,밭일을 그리 많이 하지 않으니, 밍기적대고 그러다가,새 봄. 나물을 한 입 먹고 나면. 그제서야 화들짝 놀라서.겨울이 갔네, 어쩌네 하는 때늦은 소리를 한다.몇 번, 봄을 맞아 안부를 묻는 이야기를 듣고서야봄이네 봄 소식도 올리고.
자전거를 새로 마련했다.봄이가 18개월쯤일 때, 자전거 사진을 몇 장 올려둔 것이 있었다. 이때 자전거는 혼자 살면서 출퇴근 하는 데에 쓴다고 샀던 것이다.십년도 더 전이었고, 그때 살 때 이미 싼값의(아마도 오만 원쯤...) 중고 자전거였는데,이제 바퀴며 기어며 손잡이며 저마다 고치든가, 새것으로 바꾸든가 하라고 성화였다.한동안 자전거를 타고 나갈 때마다 바람을 넣어가며 타다가,결국 큰 수리를 해야 되는 상황.(예전 사진을 뒤적이면 깜짝깜짝 놀란다. 얘, 누구지? 봄이야? 강이야?) 새 자전거를 마련했다.예전 자전거에 있던 안장을 떼어 오고,몇 가지 부속을 바꿔 달았다.자기 필요에 맞는 자전거 고르기가 조금 복잡했다.자동차 살 때 수동변속기 골라 사기 어렵듯이자전거도 그런 경향이 있다. 내게 필요한 자..
악양은 대봉감. 시배지입니다.대봉감 크고 맛있기로 내세울 만합니다.그에 못지않게 가격도 비쌉니다만,그것도 없어서 못 팔던 것이 몇 해 전인데,올해 사정이 좀 달라지는 것 같아요. 전국적으로 대봉감 심은 곳이 많고, (논이 감나무밭이 되었지요.)올해 어디든 풍작입니다. 악양도 제가 들어온 일곱 해 이래로손에 꼽을 만한 풍년입니다.그만큼 감이 팔리는 것이 예전같지 않으니한해 가장 큰 농사인데, 집집이 더 편치 않을 겁니다.바깥일을 보고 들어올 때마다대문간이든 마루든, 홍시 한 상자씩놓여 있는 날이 많습니다.홍시는 어떻게 해서도 차에 실어서 보내기가 어려우니까마을에서 유일하게 대봉감 없는 봄이네한테다들 한 상자씩 가져다 주십니다.역시, 감은 나무에 매달려서 홍시가 된 것이 더 맛있어요.서리도 내렸으니 이제 딴..
올해 초에 밭에다가 귤나무, 한라봉, 금귤, 레몬나무를한 그루씩 심었어요.귤나무에는 제법 귤이 열렸습니다. 이것은 레몬나무.레몬은 아직 올해에는 열리지 않았습니다.악양은 남해에서 차로 삼십분 쯤이에요.그만큼 따뜻하기는 하지만,그래도 이 나무들이 지내기에는 겨울이 춥습니다. 그래서 작게 [비닐집-온실]을 지었어요.나무들 겨울나기도 돕고,옆에다가는 푸성귀라도 조금 심어서겨울에도 밭에서 난 채소를 뜯어먹으려구요. 처음에는 흔한 비닐하우스 자재를 쓰려고 했는데.비닐집을 아주 작게 짓는 것이다보니,오히려 비닐하우스 자재를 쓰는 게 돈이 더 들게 생겼어요.중고 자재를 쓴다고 해도 마찬가지였지요.그래서 집 지을 때 쓰는 나무 각재를 구해다가 뼈대를 만들고비닐을 둘렀습니다.그저 이렇게 하면 무너지지는 않겠지 하는 어림..
깨 털고, 콩 털고집집마다 그러고 있습니다.며칠 비가 오니 마당 한 켠, 담벼락 한쪽으로깻단 묶은 것이 비닐을 쓰고 서 있는 집도 많아요. 들깨는 많이 심지 않았어요.그저 잎채소로 따먹고, 들깨죽 몇번 끓일 만큼입니다.그래도 들깨 터는 날에는 어느 집에서 들깨를 털든온 마을에 들깨 냄새가 가득합니다. 서리태 풋콩도 조금 해서는 밥에 놓아 먹고 있어요.동동이는 날마다 콩 없는 밥과 콩 있는 밥을번갈아 주문합니다. 작년에 담근 장도 갈랐어요.맛이 잘 들었습니다. 몽쳐진 메주를 조물거리고 있으니아이들이 한 손가락씩 푹 찍어 먹습니다.항아리에 간장, 된장 자리를 잡고 앉혀 놓으니뒤주에 곡식 쌓아놓은 기분이 나요. 유난히 뱀을 많이 본 가을이었어요.집 앞에서도 살모사를 두 번이나 보았지요.다른 곳에서도 보고.꽃뱀..
아마도, 막 9월이 시작될 무렵일 겁니다.여름은 그리 덥지 않았지만,그렇다고 가을이 일찍 온 것은 아니었어요. 여름내 얼려두었던 완두로는 앙금을 만들어서토종밀 밀가루 반죽으로 만주를 구워 먹었습니다.아이들, 특히 단맛을 좋아하는 동동이가 좋아했어요.엄마가 구운 것 가운데 이렇게 단 것이 없었거든요.저 역시도 아내가 아이들 것이 아니고 제 것이라고찜해 준 것은 하나도 남김없이 얼른 먹었다는. 올해 토종밀이 맛이 좋았어요. 덕분에 이렇게 간단하게 구운머핀을 자주 먹었지요. 이제 프랜챠이즈 빵집에 발길을 끊은 것도 몇 년. 올해 마지막 남은 쌀을 찧었습니다.아마도 방앗간에 쌀을 맡기는 집 가운데 저희만큼찔끔찔끔 쌀을 찧는 집도 얼마 없을 거예요.방앗간 옆집의 특권 비슷한 것. 타작을 하기 전에 마지막 도정을 ..
지난 여름_01에서 이어지는 것. 0809 김매러 갈 때, 아이들이 종종 따라나선다. 우리 논에는 논물 드는 물길이 개울처럼 흘러들게 되어 있다. 봄이와 동동이는 그 좁은 자리에서 몇 시간이고 물장난을 친다.그렇게 놀고는 동동이는 짐차 뒷자리에서 자고, 봄이는 저 혼자 더 논다.이날은 날씨도 좋고, 김매기도 얼추 끝이 보이는 때여서, 잠시 여유를 부려가며 일하다 말고 사진도 찍었다. 그러니까, 이런 사진을 그저 평소에. 찍을 수 있다는 게,아이한테나 나한테나 좋은 것 아니냐. 으쓱해지는 게 있다.물론, 그런 것은 사진같은 풍경이 금세 지나가듯, 지나가지만. 0809 날은 저녁까지, 깜깜해질 때까지 좋았다.위에 불 큰 것 두 개는 뒷집.맨 아래가 봄이네 집. 0812 날이 그리 덥지 않았다.벼르고 벼르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