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시즌.이 시작되었습니다. 봄.이라고 하기에는 조금 늦었고, 초여름이라고 해 두죠. 사진이 한 컷도 없는 것은 밥 먹을 때 사진기 챙겨야지, 했던 것이 장화 신고, 낫 챙기고, 하는 사이 새하얗게 지워지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매 끼니마다 되풀이됩니다. 짤막하게라도, 밀 타작에서 모내기로 이어지는 봄 이중일을 '날마다' 올려보겠다는 결심을 한 것은 물론, 작년 일이 쫌 가물가물한 것이 있기 때문입니다. 어제는 콤바인을 위하야 논 가장자리를 따라 밀을 베어냈습니다. 기계로 베다 보면, 맨 가장자리는 제대로 베지 못 하고 남겨지거든요. 중부 지방이나, 뭐 어지간한 동네는 이미 모내기를 끝냈습니다. 악양에도 모내기 끝낸 곳이 많지요. 하지만, 밀 농사를 짓는 집은 모내기가 늘 꼴찌입니다. (따라서 가을..
며칠 꼬박 앓아누웠더랬습니다. 악양에 내려온 이래로 가장 되게 앓았어요. 덕분에 알게 된 것은 하동 읍에 있는 의원들은 링게루 주사 놓고, 환자 쉬고 하는 자리를 침대가 아니라 뜨끈한 방바닥으로 만들어 놓았다는 것입니다. 정말 편했습니다. 옆자리 누운 할매가 코만 안 곯았다면 더 좋았을 텐데요. 앓기 전에 막 피기 시작하던 감꽃이 꼭지마다 곱게 말려 올라 있습니다. 감꽃이 피고, 매실을 따기 시작하고, 모내기 하려고 물 댄 논이 하나씩 늘고. 밀도 익어갑니다. 작년, 재작년하고는 정말 다른 분위기입니다. 매실은 수확이 작년 절반쯤이다 하시는 분이 많구요, 감나무도 튼실하지는 않습니다. 게다가 섬진강 가까이에서 자라는 하동 배에는 병이 돌아서 이미 열린 과일 가운데 반쯤은 썩었다 합니다. 밀도 마찬가지입니..
산딸기 익었을려나? 아니, 아직, 익고 있을 걸. 살구는? 살구도 좀 더 있어야지. 그럼, 앵두가 처음이네. 그러네. 첫 과일이네. 작년에는 내가 먹은 것만, 대략 한 바게쓰. 정도? 여기저기 몇 나무 얻어서 따고, 누군가 따서 갖다주고, 앵두는 열매를 '딴다'기 보다, '훑는다'라고 해야 할 나무인데, 올해는 전혀 그렇지 않다. 아래쪽은 따먹었다손 치더라도, 위쪽은 아직 거의 아무도 손대지 않은 것인데, 저리 듬성듬성한다. (옆집 할매네 앵두나무는, 이제 거의 공식적으로다가 봄이 것이 되얐다.) 봄이는, 한밤중에 잠자리에 누웠다가도, '앵두'를 외친다. 이 녀석아, 이제 앵두는 얼마 남지 않았단 말이다. 게다가 지난 주말, 어김없이 퍼부어 주신 비 덕분에, 남은 앵두도 다 떨어졌다. 어여, 산딸기 한 ..
언젠가 짓겠다고 그림을 끄적거렸던 뒷간-뒤주-헛간이 꼴이 조금씩 잡혀갑니다. 시골 살림, 집에서 넓어야 할 것은 창고이고, 좁아서 좋은 것은 잠자는 방입니다. 목조 주택에 관해서는 전혀, 아무런 경험도 없이 저와 장인 어른 둘이서 짓는 덕분에 제대로 짓고 있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만, 어쨌거나 아직, 하자도 없고,(사용하기 전이므로 당연히...) 넘어지지도 않고, 바람에 날라가지도 않은 채, 벽이 서고, 지붕이 덮이고 그럽니다. 어제까지 지어진 모습, 완전 초보인 두 사람이 7일이 걸린 것 치고는 (기초 빼고.) 그럭저럭 선방이라고 내심 만족스러워 하는 중. 기초 해 놓고 처음 시작할 때에, 찾아온 강원도 산골 목수. 설계 자문을 비롯하여, 맨처음 어떤 식으로 건물을 지을 것인가까지, 모두 아정의 남편이신..
어제는 뒷집 할매가 옥수수 몇 개를 주고 가셨습니다. 작년에 따서 얼려둔 것입니다. 언제든 자식 새끼 오면 주겠다고 냉동실에 넣어둔 것 가운데 몇 개를 꺼내서 봄이 삶아먹이라고 주셨습니다. 삶은 옥수수 먹는 것은 처음인데, 앉은 자리에서 몇 개를 먹을 만큼 옥수수를 좋아합니다. 올 봄 날씨가 좋지 않아서 새들 먹이가 모자라나 봅니다. 밭에 심은 옥수수며 콩이며, 싹이 올라오는대로 새들이 쪼사 먹고 있습니다. 옥수수를 따 먹으려면 아무래도 따로 모종을 내서 심어야 할 것 같습니다. 오랫만에 볕이 좋은 날이라 봄이하고 잠깐 마실도 나갔다가 바람 좋은 마루에 앉아서 햇볕에 바싹 마른 빨래를 개킵니다. 봄이는 옥수수를 먹습니다. (멀리 사는 할머니, 할아버지에게 보여 드릴 동영상을 여기에.쿨럭. ^^; )
약간의 설계 변경이 있은 후에, 뒷간과 뒤주(를 겸한 헛간)를 짓기 시작했습니다. 그 사이 밭에는 오이와 가지와 고추 모종 따위가 심겨졌지요. 처음 해 보는 '제 손으로 집(은 아니고 창고이지만.)짓기'는 정신을 쏙 빼놓기에 부족함이 없구요, 덕분에 늘 손이 부어 있습니다. 헌데, 올해 봄 날씨가 참 유난하지요. 시장에 나가 채소 사기도 어렵고, 채소 농사 짓는 사람은 봄 농사가 아예 결딴이 났으니, 넘치는 빚은 고사하고 이자 돌려막을 길도 감감할 겁니다. 공사 하는 것이야 며칠 미뤄지면 그만입니다만, 이렇게 비가 올 바에야, 조금 더 넘쳐서 4대강 공사장마다 수중보 따위나 쓸려 내려가면 좋겠습니다. 비 긋고, 볕 나면 잠시 다녀가셔서 밥 한 끼라도 같이 하시길.
4월도 훌쩍 훌쩍 지나고 있습니다. 마을 바깥의 소식은 어느 것 하나, 마음이 힘들지 않은 것이 없습니다. 저녁부터 빗방울이 듣기 시작하니, 남은 벚꽃도 다 질 것입니다. 뿌리를 캐 와서 옮겨 심은 정구지는 며칠 지나지 않아 듬성듬성 싹을 내밀었습니다. 솔.이라고도 하는데, 토종 부추는 잎이 좁고 동글동글합니다. 모양보다 중요한 건, 이쪽이 훨씬 맛있습니다. 조금 고소하면서, 단맛이 돌거든요. 이건, 시장에서 흔히 보는 잎 넓은 개량 부추이고요. 뒷집 꼬부랑 할매가 파를 캐서 가져가다가 한 움큼 쥐어주셨습니다. 사진 하나 박아 놓고는, 파전 한 장 부치고, 양념장 조금 해 놓고, 또 몇 뿌리 남겨서는 도로 심어 놓았습니다.
작년에 옆집 할매가 방금 찐 옥수수를 몇 개 가져다 주었습니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게, 제 손바닥만큼 작은 옥수수였지요. 찰옥수수 큰 것만 보던 저는 이거 자라단 만 옥수수가 아닌가 싶었습니다. 게다가 옥수수는 그리 즐겨 먹는 편이 아니었거든요. 그런데, 알알이 쫄깃쫄깃하고, 감칠맛이 나는게, '방금 따서, 방금 찐, 맛있는 옥수수'가 무엇인지 알게 되었습니다. 감자밭 옆으로 옥수수를 심는 게 좋을 거 같아, 할매한테 '옥수수 씨 할 거 좀 있으세요?' 했더니, 다음 날 새벽, 저희 집 마루에 옥수수 종자를 두고 가셨습니다. 올해, 옥수수 농사가 어찌될 지 모르겠습니다. 요즘은 하루 걸러 비가 오는 통에, 다들 밭이 질어서 애를 태우고 있습니다. 갈고, 씨 뿌리고 해야 하는데, 3월 봄날씨라고 하기에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