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희가 이 마을에 이사를 오고 나서 지나는 할매들이 이구동성으로다가 아이고, 귀신 나올 것 같더니 이제 사람 사는 집 같네. 마을에 기저귀 널은 거 얼마만에 보노. 하시면서 아주 흡족한 표정으로 한마디씩 던진 날은, 마당에 새하얀 기저귀를 가지런히 널어 놓은 날이었습니다. 애기 울음소리와 기저귀 널린 마당 덕분에 저희는 마을 어른들께 더 귀염을 받는 젊은 것이 되었지요. 오랫만에 후배에게서 연락이 왔습니다. 다음주에는 아기를 낳는답니다. 기다리고 기다리다가 병원의 힘을 빌어서 생겨난 아이입니다. 남자 아이와 여자 아이의 쌍둥이라지요. 다행히, 크게 아픈 곳 없고, 아기들도 잘 자란다고 했습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아기 입을 것이며 잠잘 것 준비한 이야기도 나왔습니다. 기저귀 이야기가 빠질 리가 없..
경상남도 하동군 악양면 정동리 부계마을. 스물세집, 일흔여덟명이 살고 있는 마을입니다. 오늘은 반년에 한번씩 하는 대동회 날입니다. 사흘전부터 이장님은 날마다 방송을 합니다. '동민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마을회관에서 알려드립니다. 내일은 부계 대동회 날입니다. 동민 여러분은 한분도 빠지지 말고 동사로 나오시기 바랍니다.' 한달 전 새로 이장이 된 아저씨는 아직도 방송할 때면 긴장이 되는지, 한 단어 한 단어 말할 때마다 아주 길게 뜸을 들입니다. 억양은 이곳 악양 말 억양인데, 면사무소 방송하드끼 서울말 단어를 골라씁니다. 동네 할매들, 듣다듣다 고마 내 속이 탄다, 속이 타. 하십니다. 대동회 날은 온 마을 사람들이 온종일 모여 먹고 떠들고 합니다. 아,아, 아침에는 결산도 하고 회의도 합니다. 마을에..
세 식구 나란히 누워 자면 꼭 맞는 작은 방인데, 아기 핑계를 대고 날마다 방바닥이 절절 끓게 불을 때서 그런지 아궁이에 땔감이 꽤 들어간다. 한달에 두어번 나무를 하러 마을 뒷산에 가는데, 그 동안 들고다닌 톱이 목공용 톱이었다. 그렇잖아도 톱질하는게 익숙치 않은데, 목공용 톱으로 땔감을 하려니 몇 시간 일하지 않아도 어깨며 손목이며. 이건 뭐. 엔진톱을 살까 생각도 했지만. '비싸, 무거워, 다루기 어려워, 위험해, 꾸준히 관리해야 돼, 시끄러워 귀 아파...' 이런 까닭으로 그만두기로 하고. 일단은 손톱으로 땔감하기에 알맞은 톱을 장만하러 구례장에 갔다. (아, 그래도 체인톱은 하나 마련할 예정, 휘발유 엔진톱 말고 충전식으로다가...) 간판에 아예 톱수리 전문.이라고 쓰여 있다. 땔감할 때 쓸 톱..
지난 목요일. 11월 26일이 봄이 첫 돌이었어. 아내는 며칠 전부터 진주에 나가 양단을 끊어 와서 아이 돌옷을 지었네. 고등학교 때 바느질하고 칭찬받았다는 경험만으로 덜컥 옷을 짓기 시작한 아내는 그렇게 몇날 며칠 꼼지락꼼지락 바늘을 놀려 옷을 지었지. 고운 양단을 끊어 온 사연 또한 한 타래가 될 만큼 이야기가 많은 것이었으나, 그 얘기는 그저 우리가 천 삯으로 이곳 감을 보냈다는 것으로만 넘기기로 하고, 돌 상을 차리는 것 또한 여기저기 말을 듣고, 주섬주섬 섬겨서는 힘 자라는 만큼 마련했네. 상을 마련하고 부부는 서로 마음에 들어서 이만하면 정성 들인 만큼 아이 돌 상으로 모자라지도 넘치지도 않는다고 생각했지. 옷을 짓고, 상을 마련하고 그렇게 돌 날을 하루 앞둔 저녁이 되니, 지난 한 해 동안 ..
도시에 살다가 시골에 가면 집. 집에 아주 큰 공을 들인다. 다 늙어 정년을 맞아 내려가는 사람도, 뭔가 큰 뜻을 품은 사람도, 그저 그냥 나같은 사람도. 아정의 작은 집 트로젝트를 보면서 이런 생각이 조금 바뀐다. 도시에 살면 정말 집에 대해서 아무런 공을 들이지 않는구나. 먹는 것에 대해서 손끝하나 까딱하지 않듯이 집에 대해서도 그렇다. 그러니까 여지껏 내가 거꾸로 생각하고 있었던 셈이다. 나도 집에 공을 들인다. 늘 마음을 쓴다. 작년 가을 잠깐 공사를 벌인 경험만으로 비추어 보건대, 아정의 지금 상황은 재난 수준이다. 다행히 마음을 모아 돕는 사람이 있고, 스스로 재난이라 여기지 않고 즐기고 있다. 대단한 힘이다. 추위를 버티는 일이 남았다. 안 그래도 겨울마다 내려올 궁리였는데, 지냈던 겨울 가..
저녁에 상추쌈을 먹었습니다. 처음 먹는 거였어요. 춘분을 하루 앞두고 상추쌈을 먹다니. 잎은 작고 아삭아삭하고 고소하고, 또 단맛이 났어요. 겨울이 따뜻한 곳이어서 그런가, 마치 시금치나 냉이나 쑥처럼. 상추도 죽지 않고 겨울을 넘긴답니다. 이건 요즘 따뜻해졌다고 갑자기 그러는 건 아니라고 해요. 그러니까 겨울을 넘긴 상추입니다. 겨울을 넘긴 상추는 처음이지요. 얼었다 녹았다 그러면서 노지에서 겨울을 보낸 상추. 이제 조금 지나면 꽃대가 올라온답니다. 그렇게 얼마 지나면 밭을 갈고 새로 무언가를 심어야 하니까, 지금 먹을 수 있을 때에 따서 마을 사람들끼리 나눠먹습니다. 시장에 내다 팔 만큼 크지 않거든요. 그덕에 우리도 얻어 먹었어요. 상추잎이 김장배추 노란 속잎보다 작고, 그것보다 더 달고 고소합니다..
오래된 집입니다. 두 사람이 눕기에 꼭 맞춤한 2평짜리 방이 두 개 있고, 그보다 아주 약간 큰 부엌이 있습니다. 대들보에는 일천구백육십팔년 상량.이라고 씌어 있습니다. 이 작고 오래된 집을 고치겠다고 했더니, '새로 집 짓는 값보다 더 들긴데','고치봤자 표도 안 나고, 고마 새로 지라','처음 생각보다 돈이 딱 두 배는 들기다.' 하십니다. 얼추 가진 돈 다 쓸 때쯤이 되니, 뭐 하나 틀린 말이 없었다는 것이 분명합니다. 집 사는 돈 하고, 집 고치는 돈 하고 비슷하게 들었거든요. 수리비도 처음 생각보다 두 배가 더 들었으면 들었지 적게 들지는 않았습니다. 그래도 이제 조금만 더 손질하면 당장 들어가서 살 수는 있겠다 싶습니다만, 공사지원비 주겠다고 점검을 나온 면사무소 공무원은 대체 공사를 하기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