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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계마을

돌아온 밀가루.

haeum_se 2009. 9. 19. 00:10


밀가루 파동이 벌써 몇 주 전 이야기다. 낮에는 따뜻해도, 밤에는 제법 추워서, 잘때는 길고 따뜻한 옷을 꺼내 입는다. 벼에 이삭도 고개를 숙인다. 올해 농사는 작년에 견주면 아주 형편없다. 아마 쌀은 그저 먹을 것 정도가 나올 것이다. 어떤 일은 때를 놓쳤고, 어떤 일은 제대로 하지 못 했다. 이제 추수까지 한 달쯤 남았는데, 아직 고개를 숙이지 않은 이삭이 많다. 그것들은 아마 추수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한다. 적당한 때에 적당한 일을 하지 않으면 어떻게 되는지, 똑똑히 본다. 다행히 굶지는 않을테니까. 잘못한 일이 많아서 그만큼 배우는 게 많다.
밀은 받지 못한 사람도 없는 듯하고, 우리도 아주 맛있게 먹고 있다. 그리고, 어제 밀가루가 돌아왔다.



뜻밖의 상자. 




린처 토르테와 화이트초콜렛쿠키. 정성스레 적은 재료 이름에는. '봄이네 밀가루'라고 적혀 있다.





사진을 찍겠다고 늘어놓은 걸, 봄이 가만히 둘 리가 없다.








결국, 쿠키를 하나 집어들었다. 오물오물 잇몸으로 조금씩 베어 문다. 좋아한다. 많이 먹는다. 


사실, 밀가루를 보내고, 우리는 돈이 아닌 다른 여러 가지를 받았다. 물론 돈만 보낸 사람은 없었다. 그 마음들을 보는 것도 좋았는데. 여하튼 밀가루가 돌아온 것은 처음. 하나씩 아껴 먹고 있다. 누군가는 아이가 입을 옷을 보내기도 했고, 다른 먹을거리를 보내기도 했다. 책으로 돌아오기도 했고, 또, 앞으로도 가끔씩 우리에게 필요한 무언가로 돌아올 것이다.
가까이 사는 사람들과 얼굴 맞대고 주고받는 것이 얼마 없어서 아쉽지만, 이렇게나마 돈 말고, 곡식을 통해 주고받으니 '사람 사는 것처럼 산다.' 싶은 우쭐한 마음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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