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월은 언제나 바쁩니다. 낮에는 바깥 일을 하고, 밤에는 자리에 앉아 무엇을 해보겠다는 생각을 하지만, 어느 해도 밤 시간에 무언가 일을 제대로 하지는 못합니다. 논에는 물을 대었다가, 며칠 전에 모내기를 했습니다. 작년, 모내기를 했던 날에 김종철 선생님께서 돌아가셨습니다. 그러니, 올해도 모내기를 하는 날에는 선생님 생각을 했습니다. 농사지으면서 마주하는 첫 손에 꼽는 풍경이 물이 가득 차 있는 논입니다. 깜깜한 밤, 환한 달빛. 어스름하게 논에 비치는 산세. 여기, 앞에 서서 참 좋은 풍경을 마주할 수 있게 해 준 사람들. 그런 생각도 했습니다. 6월에 들면, 매실을 따서 낸 다음, 마늘을 뽑아 걸고, 양파도 뽑고, 감자도 캡니다. 밀을 베고, 논에 물을 대고, 모내기를 합니다. 그런 나날에서도 양..
파장이었다. 문을 닫은 가게들이 더 많았다. 환한 등불이 걸린 가겟집 주인들은 길가로 나온 물건들을 상자에 담고 있거나, 커다란 천막을 펼쳐서 뒤집어 씌우거나,혹은 의자에 앉아 띄엄띄엄 지나가는 사람들을 하나씩 빤히 쳐다보곤 했다.어릴 적 심부름 하느라 콩나물 한 봉지, 파 한 단, 감자 몇 개, 두부 한 모 따위를사 나르던 채소전과 닮은 가게 앞에서, 오랜만에 익숙하고도 편안했다.가.형광등 아래 철 모른 채 새파랗고 새빨갛고 반짝이는 피망이며, 호박이며,가지며, 오이들을 한참이나 낯 모르는 손님 대하듯 쳐다 보았다. 집으로 오는 길에 아이들은 잠이 들었다. 지인의 결혼식이 있었고,진주 공설운동장에서는 갖가지 천막과 장사와 전시장이 버무려진주제를 알기 어려운 짬뽕의 축제가 있었다.평소에 무언가를 사 주는..
봄날. 기운 얻어서 손끝 발끝에 힘 주고다시 땅에 나가 일을 하고. 그래야 하는 때는이미 오래전에 지났다.정월 보름이 아주 늦어서, 머슴날 영등날은양력으로 삼월이 지나도 한참 지난 때였다.그래도 그 즈음에는 산에 머위도 나고,봄이는 길섶에서 꽃가지를 꺾어다가 제 신발에 꽂아놓고는 했다. 정월 보름이 지나면 마을 어른들이야 밭에 나가는 날이 잦아지지만,밭일을 그리 많이 하지 않으니, 밍기적대고 그러다가,새 봄. 나물을 한 입 먹고 나면. 그제서야 화들짝 놀라서.겨울이 갔네, 어쩌네 하는 때늦은 소리를 한다.몇 번, 봄을 맞아 안부를 묻는 이야기를 듣고서야봄이네 봄 소식도 올리고.
옥수수라는 제목으로 세번째. 어렸을 때, 아마 초등학교 2학년이거나 3학년이거나. 그 무렵으로 기억하는데, 외가집에서 여름 방학을 보낼 때였다. 옥수수 삶은 것을 먹고는 (맛있게 먹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분명한 것은 익숙한 음식은 아니었다는 것.) 급체를 해서 생꿀을 한 주발 먹고, 열이 올라 외할머니 등에 업혀 보건소에 갔다 온 적이 있다. 그 일 때문이었는지는 몰라도, 옥수수는 찐 것이든, 구운 것이든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작년 봄에 글을 올릴 때는 호기롭게도 종자를 나누겠다는 이야기를 했으나, 소작했던 것이 얼그러져서 제대로 옥수수 맛도 보기 어려웠다. 올해는 아무 소리 없이. 처음으로 마련한 밭뙈기에 옥수수를 심었다. 옥수수 딸 때가 되었으나, 태풍에 물난리에 옥수수는 넘어지기도 하고, 더러 ..
* 밀가루 팔고 있던 것 가운데 토종밀 밀가루와 밀기울, 밀쌀은 더 이상 남아 있지 않습니다. 금강밀 밀가루만 남아 있어요. 고맙습니다. 아이가, 고마 내가 하까? 팔십 먹어가 내 하까? 읎어, 여 놉 얻을 사람 읎어. 밀 농사를 짓지 않고, 일찌감치 모내기를 한 논은 이미 이삭이 패고, 꽃이 달렸다. 그런데, 이제서야 논을 매겠다고 시작했으니,늦어도 한참 늦었다. 놉을 얻을 수만 있으면(돈 주고 일꾼을 구할 수만 있으면) 사람을 여럿 얻어서라도 일을 얼른 끝내고 싶었지만, 이 더위에 이제 논 매는 일에 나서는 사람은 없다. 젊은 사람이 얼마 없는 까닭이다. 좀 젊다 싶으면 다들 제 할 일에 코가 석자다. 게다가 올 여름 지독하게도 비가 긋지 않았던 날씨 탓에 뭐하나 제대로 말려둔 게 없으니 일손은 더 ..
대보름 지나 며칠. 작년 대보름에는 달집 태우는 것이며, 풍등이며 제법 보았지만, 올해는 거의 모든 행사가 없어졌어요. 마을 사람들도 조용하게 지나는 분위기였지요. 보름이 지났으니, 팥밥은 아니고 (쉬기 전에 얼른) 나물 남은 것 몇 가지를 비벼 먹습니다. 지난 봄 산에서 해다 놓은 묵나물 몇가지가 어울려 추운 겨울을 꾹꾹 눌러 담은 맛이 납니다. 역시 나물 비빔밥은 보름날 무쳐서 먹고 남은 것을 하루이틀 지나 비벼 먹는 것이 한해 어느 때보다 좋습니다. 철마다 푸릇한 것, 시원한 것, 향긋한 것, 맛이 있지만은 말입니다. 얼마전부터 현미밥을 먹기 시작했어요. 가끔 현미나 잡곡을 조금 섞어서 먹기는 했지만, 흰쌀밥이 최고야.라며 (이것에서만큼은ㅋㅋ) 의기투합하던 부부였거든요. 하지만, 어느 날 아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