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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계마을

유자차

haeum_se 2009. 12. 15. 20:06

처음부터 유자차를 담글 작정은 아니었는데... 처남이 한동안 거제도에서 지냈어요. 어느 날 와서는 하는 말이 시장에 유기농 유자가 나왔는데, 생긴 게 못 생기고 크기도 들쭉날쭉하고 그래서 사람들이 잘 안 산다는 겁니다. 가게 주인이 덤으로 준다고 하는 걸 안 받아 가더래요. 못 생겼다고. 이야기를 들어보니 어디 한의원 하는 집에 유자밭이 있다는데, 거기거 유기농으로 키운 걸 팔 데가 마땅치 않으니까 동네 시장 과일가게에 부탁해서 파는 거라지요. 참, 아직도 유기농 과일을 외면하는 사람이 있다니 놀랍더라면서 얘기를 했어요.
솔직히 겨울에 유자차만큼 달고 맛있고 따끈한 게 없는데(제대로 담근 거라면 모과도 좋지. 흠) 유자는 껍질째 먹잖아요. 농약친 것은 먹기 싫은 덕분에 머릿속에 쓸데없이 아는 게 생기고는 맛난 유자차도 골라 먹기가 마땅치 않았는데, 이거다 싶었지요. 시골 내려와 살면서 좋은 게 이런 거지. 파는 유자차는 뭘 넣어서 만든 건지 알 수가 없고, 유기농 유자차라고 어디 매장에 가서 샀던 건 썩 맛이 없었고. 담가 먹는게 별로 어렵지도 않다는데. '처남, 그거 한 박스만 주문 안 될까?'


유자 많이 나는 곳이라고 들은 곳은 고흥, 남해, 거제 이쯤인데, 남해나 거제에서 난 것이 더 맛있고, 향도 좋다니 은근히 기대가 되었지요. 그리하여 유자가 왔는데, 따로 주문을 해서 그랬나, 그날 딴 것을 바로 상자에 담아 택배로 보냈어요. 온 집안에 유자향이 새콤달콤하고 알싸한 것이... 상자를 열어보고 식구들끼리 너나없이 한 마디씩 하는데, 결론이 모아지기를, 이것은 '유기농 유자'라기 보다 '방치 유자'에 가깝지 않은가. 한의원을 한다는 집이니까. 아마 틀림없이 그럴 거야. 그냥 뒀다가 따기만 한 거 아닐까. 
어떤 것은 탱자만 하기도 하고, 어떤 것은 밀감보다 큰 것도 있고. 유자를 지금처럼 설탕에 재서 차로 담가 먹은 지가 얼마 안 된다고 하셨어요. 지금처럼 설탕을 쉽게 구할 수 있게 된 게 얼마 되지 않은 일이니 당연하겠지요. 유자를 생걸로 먹을 수도 없는 노릇이고. 그래도 유자는 향이 좋으니까 옛부터 탱자는 눈에만 좋고, 유자는 사람 손 끝에서 논다는 말이 있었다고 해요.
유자차 만드는 방법은 마침 어른들께서 잘 알고 있어서 하나하나 배우면서 했어요. 




우선 잘 씻은 유자를 반으로 자릅니다. 생긴 게 밀감을 닮아서 저는 유자에도 씨가 없는 줄 알았어요. (어렸을 때는 아주 가끔 밀감에서 씨가 나오기도 했는데. 그 때 얼마나 깜짝 놀랐는지. 원래 씨가 있는게 정상이겠지요.) 헌데, 유자에는 씨가 많아서 그걸 하나하나 골라야 해요.그럴려면 반으로 잘라야지요.



그 다음에 숟가락으로 속을 파 내요. 애지랭이 숟가락이 있으면 딱 좋겠지만, 요즘은 감자 깎는 칼이 따로 있으니 애지랭이 숟가락은 없고, 그냥 밥 먹던 숟가락으로 했어요.


속을 파 내지 않고 그냥 채를 썰면서 씨를 빼도 되지만, 속을 파 내면 껍질이 깔끔해져서 나중에 유자차를 마실 때, 껍질을 씹어먹는 느낌이 훨씬 좋아요. 안 그러면 약간 너덜너덜한 게 씹히죠.



씨를 골라낸 속은 따로 칼로 다져서 넣고. 


껍질은 잘게 채를 썰어요. 여기가 가장 어렵지요. 조금이라도 두꺼우면 나중에 껍질을 잘 안 먹게 되거든요. 씹을 때 조금 뭉턱하고, 아릿하기도 하고. 껍질째 담그는 거라 비싼 유기농 유자를 샀는데, 차 마시고 껍질도 아작아작 씹어먹을 수 있게 담가야지. 숙련된 손길이 아니면 썰기 어려워요. 유자 껍질의 1/4에서 1/5쯤은 제가 직접 썰었는데, 그만큼이라도 썰 수 있었던 건 독일제 채칼의 힘을 빌린 덕분.



씨도 발려내고, 속은 다져놓고, 껍질은 채 썰고. 그러면 이제 마지막으로 커다란 스뎅 다라이에 껍질과 속을 부어놓고 설탕에 버무려요. 유기농 유자를 썼으니, 설탕도 거기 맞춰서 유기농 비정제 설탕을 썼어요. 브라질산이고, Goiasa라는 이름표가 붙어있는 것. 
유자 무게 만큼 설탕을 넣고 잘 버무린 다음, 항아리에 넣으면. 끝.
한달 쯤 지나면 그 때부터는 맛있는 유자차를 겨우내 원없이 먹게 될 듯.


**
덧붙여.
이렇게 담근 유자차가 양이 꽤 많아요. 저희가 먹을 것을 남기고 나머지를 팝니다.
자세한 것은 http://haeumj.tistory.com/18 이 글 아래쪽을 살펴봐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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