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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계마을

봄이와 달걀

haeum_se 2018. 4. 26. 19:28


몸이 가벼운 저녁입니다.
머리도 맑고요.
며칠 날이 좋았습니다. 
연둣빛 잎들이 반짝이는 저녁입니다.
봄날, 그런 저녁이 며칠 찾아옵니다.
저녁을 먹고도 몸이 가볍고,
늘 머릿속에 꽉 차 있던 고민들도
'뭐, 그런다고 달라지겠어?'하는
편안하고, 합리적인 마음이 드는.
소매가 조금 짧고, 바람이 잘 감기는 옷이
더없이 어울립니다.
집 앞 골목길을 지나서
천변 공원을 한번 걷고 오곤 했던 기억이 나는
저녁이에요.


여기까지 적고,
역시 아무래도 안 되겠어서
잠깐 바람을 쐬고 왔습니다.
달걀 얘기를 적어두려고요.
며칠 전에 달걀을 샀습니다.
한동안은 봄이네도 닭을 키웠지요.
작년에 그러지 못했습니다.





두 번, 혹은 세 번 닭장에 스무 마리씩 중병아리를 사다 넣었습니다만,
그 때마다 정체 모를 짐승이 닭들을 다 물고 가 버렸지요.
집과 떨어진 외딴 밭에 닭을 키우려면 그만큼 수고를 해야 합니다.
올해는 닭장 안에 모종을 심었습니다.
대대적으로 닭장을 수리하거나, 다시 짓거나 하기 전에는
닭은 일단 보류.


시골 내려와서 뭔가 개괄하듯 
이야기를 한 번 쭉 훑자면,
먹는 거 이야기가 빠지지 않습니다.
먹는 것, 이야기를 하다 보면
자꾸 한 얘기 하고 또 하고 그러는 게,
봄이와 달걀이야기입니다.
봄이가 아주 어릴 때였고,
닭을 키우기 전이었지요.
간단히 하자면,
1) 이웃에 닭을 아예 풀어놓고 키우는 집(뒷산닭)에서 달걀 얻어 먹음
2) 봄이가 최고의 달걀이라고 너무 맛있다고 폭풍 칭찬.
3) 마당에 닭운동장을 만들어 놓고 키우는 집(마당닭 : 음식찌꺼기+곡식사료)에서 달걀 얻어 먹음
4) 이것도 맛있다고 함. 
5) 그러나 뒷산닭보다는 못하다라고 분명하게 말함.
6) 몇 달 뒤, 겨울 : 뒷산닭의 달걀을 다시 얻어 먹음
7) 봄이가 마당닭 달걀이네라고 함.
8) 아니라고, 이것은 뒷산닭, 그집 달걀이라고 얘기해 줌.
9) 봄이는 아니라고 이것은 마당닭 달걀이라고 우김.
10) 며칠 뒤, 뒷산닭집에서 말하기를 요즘 날이 너무 추워서 얘들한테 음식찌꺼지와 사료를 먹인다고 얘기함.
11) 그러니까, 봄이는 오로지 맛으로 뒷산닭과 마당닭의 차이를 구분.


위에 달걀 사진은 며칠 전 합천에 가서
살 수 있었던 달걀입니다.
두 줄을 샀는데, 두 개의 상자마다
하나씩 흰 달걀이 있었어요.
어릴 때, 시장 닭집에서 몇 알 씩
달걀을 사오곤 할 때, 흰 달걀 누런 달걀을
부러 섞어서 샀어요.
보기에 좋았지요.
반가웠습니다.
닭을 키워서, 달걀 농사를 짓는 사람은 열일곱 살이라고 했습니다.
작년에는 매가 한 마리 닭을 채 가기도 했다고 그러고.
닭이 여기저기 달걀을 숨겨서 낳으면,
그걸 찾아서, 저렇게 모아서 파는 것이라고 해요.
맛 있는 거 먹고, 자랑질이었습니다.
고마운 저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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