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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머와 아름다움

대동회

haeum_se 2010.01.24 21:37



경상남도 하동군 악양면 정동리 부계마을.
스물세집, 일흔여덟명이 살고 있는 마을입니다.
오늘은 반년에 한번씩 하는 대동회 날입니다.

사흘전부터 이장님은 날마다 방송을 합니다.
'동민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마을회관에서 알려드립니다.
내일은 부계 대동회 날입니다. 동민 여러분은 한분도
빠지지 말고 동사로 나오시기 바랍니다.'
한달 전 새로 이장이 된 아저씨는 아직도 방송할 때면
긴장이 되는지, 한 단어 한 단어 말할 때마다 아주 길게
뜸을 들입니다. 억양은 이곳 악양 말 억양인데,
면사무소 방송하드끼 서울말 단어를 골라씁니다.
동네 할매들, 듣다듣다 고마 내 속이 탄다, 속이 타. 하십니다.

대동회 날은 온 마을 사람들이 온종일 모여 먹고 떠들고 합니다.
아,아, 아침에는 결산도 하고 회의도 합니다.
마을에서 반년동안 쓴 돈 말입니다. 여기는 상수도가 따로 없습니다.
마을 뒷산 높은 곳에 작은 보를 놓고 물을 끌어다가 쓰지요.
그 보를 관리하고 모터 돌리고 하는 수도세가 가장 큰 돈입니다.
그리고 이장님한테 수고한다고 조금씩 거둬가 주는 돈이 있고요,
마을 행사때 조금씩 쓰는 돈도 있습니다. 
그렇게 반년 동안 쓴 돈을 다 합한 다음, 스물세집이 꼭같이 나눠냅니다.
물론, 어느 몇 집인가는 누군가 대신 내어주기도 합니다.
오늘 그렇게 낸 돈이 오만 칠천원입니다.
다들 그 자리에서 주섬주섬 돈을 집어줍니다. 
특별히 회의라고 안건이 있지는 않았습니다. 그렇게 동사 안에서는
사람들이 빙 둘러앉아 이장님 하는 얘기도 듣고, 돈도 내고,
이야기도 하는 동안, 바깥에서는 젊은 남자 어른들이 
목장갑을 하나씩 챙겨들고 트럭에 올라타고는 어딘가를 다녀왔습니다.
(그래도, 이곳 악양은 젊은 사람들이 꽤 있습니다. 부계마을만 하더라도
30대인 남자는 저 혼자이지만, 40대인 사람은 일여덟명이나 됩니다. 
농사지어 먹고 사는 마을에서 삼사십대가 10%를 훌쩍넘는 곳이라니, 
제가 아는 그런 곳은 변산과 홍성밖에 없습니다. ^^; )

'이래 하면 이장 인수인계는 잘 하는 기제?'
예전 이장님이 그만두는 기념으로다가 잡은 돼지랍니다.
동사 앞은 금세 잔칫날 분위기입니다. 
커다란 양은솥이 걸리고, 고기를 숭덩숭덩 썰어넣어 삶습니다.
한 옆에는 남정네들이 둘러 앉아서 땔감 몇 토막 위에 석쇠를 놓고 고기를 굽고요,
얼음장 같은 물에 내장을 손질해서 순대도 만들고,
돼지머리는 한쪽에 잘 챙겨두었습니다.
내내 자리에 앉아서, '여도 한 접시 주고.' 하면서 먹기만 하는 분도 계시고,
이 자리 저 자리 옮겨다니면서 
'등뼈는 조각조각 내 주게.' '고기 좀 빠싹 꿉으,' 
참견하다가 퉁박 맞고 머쓱해하는 할매도 있고,
부엌 설겆이통 앞에서 꼼짝 못 하는 아주머니도 있습니다.

아침 나절 몇 시라 정해진 것도 없이 그저 사람들 나오는대로
시작된 大동회는 돼지 한 마리 덕분에
'해 넘어갈 적까지는 먹어야제?'하는 분위기가 되어서
천천히 먹고 떠들고 웃고, 그랬습니다.

지난 한 해, 우리 마을에서는
이른 봄 고사리며 취나물을 뜯기 시작해서,
토란 심고, 볍씨 뿌리고, 매실 따고,
밀과 보리를 거두고, 모내기를 하고,
여름내 토란대를 까고, 
벼를 베고, 밀과 보리를 심고,
밤 털고, 감 따고, 곶감 깎아 말리면서 한 해를 보냈습니다.
몇십년만의 장마비라고 했던 비에도
다행히 큰 난리를 겪은 집은 없었고,
자식내미 시집 장가 보낸 집이 두 집이고,
어머니가 돌아가신 집이 한 집이고,
새 손주새끼 품에 안은 집이 한 집이고,
그리고, 참, 
아기가 돌을 맞은 집도 한 집 있습니다.

앞집 할매가 나비라고 부르는 동네고양이도
새끼를 세 마리 낳았습니다.
이 녀석들 잘 자라서 올해는
우리집 헛간을 들락거리는 쥐들 좀 안 오게 해주면 좋겠습니다.







댓글
  • 연우네 고냥이군요.
    왠지 일케 부르면 더 정감 가는 거 있죠.
    이미지 속의 고냥은 참 귀엽구 이뻐요.
    일본갔다가 고냥 인형 종류가 그렇게 많은 걸보고 혹한 제가,
    올때 고냥 인형만 한아름 사와서 주변에 선물로 안겼다지요.
    사람들은 머냐 이게 하는 표정이었지만 말입니다.
    평소 저 같으면 분명 먹을 거였을 터라 내심 황당했겠지요.
    아마 그때 첨 쭈욱 사용할 수 있는 물건이 아닌 어떤 것에 혹한 순간이랄까요.
    꼭 사용위주의 재화만 구매하지 않을 수도 있다라는... ㅎㅎ
    여측하니, 현실 도심속 고냥은 길냥이거나, 가게 부엌 쥐잡이용 이어서,
    그리 알흠답지는 않지요.
    위 사진속 고냥들이 진정 고냥의 소임을 다하며 고냥답게 사는 듯도 하네요.
    2010.01.25 09:22
  • haeum_se 저도 맨처음 일본 여행을 다녀왔을때, 사들고 온 것은 두 가지. 책, 아니면 먹을 것(혹은 먹을 것에 관련된 그릇, 냄비 따위)이었어요. 그것은 그 다음에도, 또 그 다음에도. 2010.01.25 21:54 신고
  • 허인숙 이제는 낯설지 않은 대동회?...
    이사와서 두해가 지났지만 아직 직접 가보지는 않았어요
    일년동안 수고한 이장님 드려야된다해서 돈만 건넸습니다 ^^..
    젊으신 분들이 그래도 많다하니 반가운 소식...여기만해도 젊은사람 거의 없거든요
    그나마 젊은 ?..축에 드는 우리는 농사를 짓지 않으니 있으나마나지요
    고기는 많이 드셨겠죠?^^....
    2010.01.25 10:04
  • haeum_se 잡아서 곧바로. 아마 태어나서 가장 짧은 시간이었지 않을까 싶어요. 살아있던 돼지가 고기로 입에 들어오기까지.
    이번에 알게 된 것은, 한 번에 뼈를 너무 많이 넣고 삶으면 맛이 달아진다는 것. 고기를 조금 얻어와서 김치찌개를 끓였는데 그것마저 단 맛이 나요.
    2010.01.25 21:49 신고
  • kim hyang 멀리서 아련한 고향소식 어깨너머 이렇게라도 접하니 반갑습니다~아주어릴적 동네 떠나온... 2015.05.01 10:43
  • haeum_se 며칠 전에 어버이날 잔치가 있었어요. 동네 아저씨가 오줌보로다가 작은 공까지 만들어 주시고 그러셨죠. ^^ 2015.05.12 15:13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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