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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계마을

달집 - 대보름

haeum_se 2010. 3. 1. 14:49


달집. 
며칠 전부터 마을 여기저기 대밭에서 
끝이 가물가물할 만큼 높은 대나무들을 한 묶음씩 베어내더니 무디미 들(평사리)에 달집을 올렸다.
아마도 악양면 사람들 모이기로는 면민체육대회보다 더 모이지 않나 싶은 날. 보름.
다른 명절이야 도시 나간 자식들 돌아온 것 챙기느라
웅성웅성하기는 해도, 집집이 틀어박혀 있게 마련인데, 보름만큼은 마을 명절.
봄이 손을 잡고 달집 태우는 것 보러 간다.



몇년 전부터는 무슨무슨 축제인지 행사인지 하는 이름을 달고 한다는데,
그러거나 말거나, 할매들은 난장이 공연패에 마음을 빼앗기고,
할배들은 널따란 멍석자리 윷판에 둘러서서 말을 들었다 놨다 고함소리가 오간다.
연휴 사이 일요일이었던 덕분에 관광객들도 적지 않게 왔다.
떡국에 음료수에 녹차 따위 달라는대로 퍼 주는 것은 물론이고,
숯불에 굽는 고기도 먼저 집어먹는 사람이 임자.
(고기 굽는 판이 20m쯤 줄줄이 늘어서 있다. 먹는 곳 사진은 없다.
먹으러 가서 사진찍는 사람들 보면 존경스럽다는. ^^;)
어쨌거나 쓰잘 데기 없는 데에 돈 안 쓰고,
놀러 온 사람들 밥 해 멕이는 데에 돈 쓰는 행사라니 명절은 명절인갑다.
여느때보다 관광객이 워낙 많았던 까닭에 (하지만, 그들도 대개는
연고가 있는 사람인 듯. 뭐, 따로 홍보하고 뭐하고 하는
그런 축제는 아니니까. 게다가 대보름은 공일이 아닌 음력 명절.)
떡국이나 음료수는 저녁 시간을 넘기면서 똑 떨어졌는데,
네 그릇째 떡국을 받아먹겠다고 찾아갔더니,
'떡국은 똑 떨어짔고, 저 가서 고기나 꿉으무라.'라는 말을 들었다.

- 한쪽에는 돈 봉투를 받는 상자가 있었는데, 마을 사람들은 형편껏이긴 하겠지만, 십 만원 내는 것도 드물지 않았다.
한 자리 하거나, 마을 유지이거나 그런 사람들이야 더 말할 것도 없고. 게다가 지자체선거를 앞둔 후보자들까지.



달집에 매달린 소원, 소원, 소원,
해가 질 무렵까지 바람이 많이 불었다.






섬진강 건너 백운산으로 해가 진다.
해 지는 때에 맞춰 제를 올리고,
하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풍물패 소리에 맞춰 춤판.
제 올리는 사진은 한 컷 찍고, 얼른 소리나는 쪽으로.



연등 크기만 한 종이 열기구.
풍등이라고 한다.

제사도 끝나고, 악기 소리도 잦아들고, 잠시 조용한가 싶더니,
스피커에서 '... ... 합니다!'하는 큰 소리가 났다.
얘기 좀 잘 해주고 날릴 것이지. 달집에 불 붙인다는 얘기인 줄 알았다가
풍등이 한참 날아간 후에야 보았다.
바람이 우리집 쪽으로 불던데, 가다가 찢어지지는 않겠지. 흠.
내 소원도 담았으니 두둥 잘 날아라.



금세 날이 어둑해지고, 무슨무슨 자리 하나씩 하는 사람들이 홰를 들고 불 붙일 자리에 섰다.
(안에는 소금을 엄청 쌓아놓았다. 저걸 나중에 묻는 건지, 쓰는 건지...)
















기름을 끼얹어놓은 달집은
순식간에 화르륵 타 올랐다.
따뜻한 바람이 부는가 싶더니 금세 얼굴이 화끈거렸다.
40-50m쯤 떨어져 있었는데도, 불똥을 몇 개나 맞았는지 모른다.
이제, 해마다, 보름이면 이 곳에 와서 소원을 빌겠구나.




소원을 꼭꼭 새겨가면서 빌고 또 비는 동안,
달집도 사그라들었다.




하루종일 악기 메고 뛰느라 고생하셨을 할매할배 풍물패도 퇴장하고,
우리는 아진이 때문에 조금 일찍 돌아오긴 했지만,
아마도 마을 사람들은 남은 고기를 굽고, 앵콜 공연 하는 패거리 구경을 하다가
밤이 깊어서야 집으로 돌아왔을 것이다.
하룻동안 소원 빈 것으로는 참 여러 번도 빌었다.




집에 돌아오니
마당에 뜬 보름달.









































보름날 빼고, 앞뒤로 장마처럼 비가 온다.
마당에 풀 올라오는 걸 보니,
어서 논둑에 마른 풀도 베고,
올해부터 부쳐먹기로 한 묵은 논도 골라야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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