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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계마을

호래기,복숭아, 재첩떡국,

haeum_se 2010. 7. 15. 22:44


모내기 해 놓은 것이 엊그제 같은데, 벌써 장마는 끝물입니다.
그래도 오늘은 어제 밤부터 내내 비가 많이 옵니다.
그치고 나면, 장마는 한풀 꺾이고, 더운 날이 올 겁니다.
직장생활 할 적에, 일하다 말고 남의 블로그를 잠깐씩(!) 기웃거린 것은
종종 먹을 것을 찾으려고. 그랬습니다. ^^;
저녁에 일 마치고 가게 될 지는 알 수 없으나, 
맛있겠다 싶은 밥집 하나 알아 놓으면, 뭔가 기대에 부풀 수 있으니 말입니다.
그래서, 오늘은 한 동안 이곳에서 먹었던 것, 몇 가지. 열전입니다.


호래기.
호래기인지 호레기인지 모르겠습니다. 인터넷 한번 검색해 보세요.
중원에 떠도는 소문이 어느 것이 진실인가 알 수 없습니다.
오징어 새끼다. 아니다 꼴뚜기다. 아니다 호래기는 호래기다.
이 동네의 의견은 호래기는 호래기. 쪽입니다.
분명한 것은 날것으로 회쳐 먹기에 딱 좋다는 겁니다. 
남해안에서 주로 나는 데다가, 나는 철도 짧은 것 같습니다.
아마 남한에서는 평생 호래기 한 번 못 먹어본 사람이 더 많겠지요.
저는 이제 그 무리에서 벗어났습니다만.
오징어는 아무래도 숙회로 익혀서 먹게 마련이지만,
제 손바닥 절반만 한 호래기는 보드랍고 야들야들해서,
익히면 금세 흐물흐물해진답니다. 
이곳 악양에서 짐차타고 30분쯤 가면 남해바다입니다.
호래기 파는 아저씨는 짐차 가득 호래기를 싣고 마을 곳곳을 돌아다닙니다.
호래기 왔어요. 호래기. 사시미꺼리 호래기 왔어요.
논에서 일하던 사람들은 까만 비닐봉지 하나 받아놓고,
일 마치고 들어가서 저녁으로 호래기 회를 먹습니다.
아, 맛이요? 다리 열 개 달린 오징어 친척 가운데 쵝오.








복숭아.
가장 좋아하는 과일? 복숭아. 하얗고 단단한 복숭아.
스스로 자기 입맛에 대해서 쫌 안다 싶어질 때부터 지금껏.
과일에 대한 답은 한결같습니다. 복숭아.입니다.
읍내에 종종 들르고 하는 과일가게는 이곳의 여러 횟집이 그렇듯
생산과 판매를 겸합니다. 남편이 물고기 잡고 아내는 횟집하고,
남편이 과수원 농사짓고, 아내는 읍내에서 장사하고.
농사짓는 과일도 꽤 여러가지입니다.
하지만, 이집에 복숭아 농사는 없어요.
분명히 복숭아 농사는 없는데, 가져다 놓은 복숭아 꼴을 보아하니,
이게 어디 도매시장에서 떼 온 물건은 아닙니다.
천도복숭아보다도 작고, 자두보다 살짝 클까요?
모양도 찌그러진 것, 움푹 패인 것, 벌레 먹은 것은 엄청 많고.
'아, 누가 폴아주라 해서 갖다 놨어.'
한 소쿠리 냉큼 집어왔습니다. 복숭아가 막 나오기 시작한 첫물인데도
자두보다 싸게 주셨지요. 이 자두만한 복숭아,
벌레 나올까 조심조심 먹어야 하는 복숭아, 누군가
약도 안 하고, 비료도 안 하고, 그저 내비 뒀다가 그냥 따기만 해서
폴아달라 맡겨 놓았을 이 복숭아가,
꿈에 그리던 그 맛이었습니다. 속살이 하얗고 단단하고
한 입 베어물면 속살에 살짝 물이 베어나오는 그런 것 말입니다.
하루만에 다 먹어치우고, 이틀인가 사흘 후에 다시 갔습니다.
복숭아가 남아 있기는 하더군요. 하지만 이미 너무 상해서
먹는게 불가능한 상황이었습니다. 주인아주머니는 
맘껏 골라가라고 했지만, 아, 첫날에
무거워서 못 들만큼 사들고 오는건데.






재첩떡국
그래도 바쁜 와중에 날이 있어서, 섬진강에 재첩 잡으러 나갔다 왔습니다.
아진이도 같이 갔지요. 처음에는 발가락 사이에 모래 끼는 것이 싫어서
줄곧 안아달라 하다가, 한번 물이 찰랑찰랑 하는 모래밭에서 놀기 시작하더니
강에서 나올 생각을 안 합니다.
성큼성큼 모래밭에서 잘도 걷는 것이 내후년쯤이면 본격으로 재첩잡이에
나설 수 있을 거 같습니다. 식구들끼리 섬진강에 나가 재첩잡는 모습은
아주 근사한 것이어서, 카메라를 들이대기만 하면 9시 뉴스 엔딩 영상은
우습게 나오겠지만, 생애 첫 재첩잡이라, 카메라 챙길 여유가 없었습니다.
원래 재첩이란 것이 낙동강-부산이 더 유명한 것이었지요. 
많이 나고, 많이 먹고. 하지만 하구둑 막으면서 재첩은 끝.
그나마 섬진강 재첩이 명맥을 유지하는 겁니다. 
강하고 바다하고 잘 만나는 곳에 재첩이 살거든요. 
다행히 섬진강은 MB 눈에 벗어난 덕분에 대규모 공사는 없지만,
지자체 장들이 어떻게든 해보겠다고 야금야금 강을 못살게 굴고 있습니다.
이곳 악양 앞 섬진강은 바다하고 만나는 곳에서는 꽤 떨어져 있지만,
광양 제철소와 여수 산단에서 섬진강 물을 통째로 끌어간 덕분에
강이 엉망이 되고, 이곳까지 바닷물이 올라옵니다. 
그래서, 원래는 재첩이 살 만한 곳이 아닌데, 재첩이 살아요.
재첩 못 잡아도 좋으니까, 강물 끌어가는 짓은 그만하면 좋겠습니다.
광양만에서 고기 잡고, 김 양식하던 가난한 어민들은
생계를 잃고 떠돌기 시작한지가 언제적 이야기인지 모르겠습니다.
재첩 얘기에서 길게 나갔군요. 사실은 복숭아든 호래기든
이런 식으로 한참 다른 얘기로 나아갈 꺼리는 널리고 널렸습니다.
무엇이든 다 마찬가지입니다. 참.




재첩 잡는 중에 함께 잡은 다슬기.
예전에는 섬진강 모래밭에 다슬기는 거의 없었다고 하는데,
다슬기도 많아졌습니다.
강이 무언가 달라지고 있는 것이겠지요.






 
그러나저러나, 분명한 것은, 직접 잡은 재첩은 사먹는 것과 견주어 최소 몇 십배 이상 더 맛있다는 겁니다.
발 끝에 붉은 기운이 도는 것이 보이시나요? 그게 섬진강 자연산 재첩의 특징입니다.
섬진강에서 나는 재첩은 대부분 씨를 뿌려서 자라면 거두는 방식입니다.
양식이라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아무래도 물고기 양식하는 거는
항생제도 쓰고 사료도 쓰고 그러지만, 이거는 씨 뿌리고 나면 알아서 자라요. 그걸 잡습니다.
이렇게 거둔 재첩은 붉은 빛이 돌지는 않아요.
그 동안 재첩국, 재첩 회무침, 재첩국수 등등 먹어보았지만,
재첩떡국. 가히 떡국 가운데 최고의 맛이라 할 수 있었습니다.
꿩고기, 닭고기, 소고기 넣은 떡국, 굴떡국... 
그 동안 떡국은 꿩고기 떡국이나 굴떡국이라고 생각했는데 말이지요.
(외할머니가 끓여주셨던 오로지 간장만 넣은 떡국은 논외입니다.)
당분간 재첩떡국을 뛰어넘는 떡국을 만나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아, 봄이요?
잘 지내고 있습니다.
요즘은 뭐 먹을 때마다, 적당히 먹어서 급한(배고픈) 순간을 넘기면
인형을 옆에 앉혀놓고는 인형 한 입, 저 한 입 그럽니다.
뭐든 잘 먹고, 또 뭐든 잘 나눠 먹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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