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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계마을

더운 여름 저녁

haeum_se 2013. 8. 11. 02:20



올해 첫 고구마 순.

따다가 저녁에 둘러 앉아서 껍질을 벗긴다.

옛날에는 이거 안 까고 그냥 먹었어.

그럼, 이거 까고 앉았을 짬이 어딨어. 

그냥 무쳐도 먹고 그랬지.

토란대도 안 벗기고 그냥 먹었는데.

엊그제 더위에 고구마 순을 하다가

돌아가신 할머니 이야기도 한다.

우리가 먹는 것, 팔할은 그런 심성 지닌 

손을 거쳤겠지. 




해마다 옥수수가 익는다.

장마가 지나고 날이 뜨거워질때, 옥수수를 찐다.

올해 것은 또, 작년 것보다 맛이 좋다.

작년에도 참 맛있다 하면서 먹었는데,

밭을 마련하고 삼 년차인 올해 

옥수수는 경이로운 맛.

http://haeumj.tistory.com/86

이것이 재작년 옥수수. 동동이가 봄이처럼 컸다.




그래서 해마다 옥수수를 더 심는다.

갓 딴 옥수수를 얼른 가져다가 삶아 먹는다.

알알이 촉촉하고, 쫄깃하고, 탱글거리고, 그리고 달다.

정말 정말 달다.

아무것도 넣지 않고 삶는데, 달다.

처음에는 아내가 사카린이라도 넣고 삶은 줄 알았다.

그러니까, 올해 알게 된 사실은,

옥수수 찔 때 사카린을 넣는 까닭은 

'옥수수 맛' 옥수수로 쪄내기 위해서다.

거기에 조금이라도 비슷해지려고 사카린을 넣는다.

달기로는 사카린을 숟가락으로 퍼 넣고 찐 옥수수보다

우리집 옥수수가 더 달다.

아마도 사탕수수나 옥수수나 형제지간일 것이다.

(요즘은 옥수수나 사탕수수에서 뭔가 뽑아내어서는

연료로도 쓰고, 뭐 프라스틱도 만든다는데,

먹을 거 가지고, 딴짓하는 거. 할 짓이 아니다.)




더위 오기 전날. 장마 끝나는 날에는 

들녘에 걸친 무지개도 보았다.

옛이야기나 만화 따위에서 무지개 끝을 찾아간다는

이야기를 들을 때는 참으로 허투루 지어낸 소리라고,

어릴 적 마음에도 그렇게 생각했는데,

도시에서 자란 까닭에 이런 무지개를 보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사진기를 들이대면서도 그런 생각이 난다.

어어, 저기 밑에 차 대 놓고, 밤나무 사이 조금만 올라가면 되긋네.




아이들은 여름날 마루에서 밥도 먹는다.

저들끼리 먹고, 놀고, 싸우다가

쪼르르 달려와서 일러 바치고. 그런다.




다정한 순간에만 사진을 찍는다.




여름 밤.

아무리 더웠다지만,

밤 바람이 맑고 차갑지 않은 여름은,

내려와서 처음.

동네 할매 할배들한테도 처음.






**

블로그에 사진 올려놓은 것을 동동이가 보았다.

아빠, 옥슈슈 조. 옥슈슈!!

없어. 다 먹었잖아.

있어! 옥슈슈 조.

없어. 밭에서 또 따 올게.

누가 다 먹었어?

이런! 엄마 아빠는 저거 하나 가지고 반쪼가리 나눠 먹고 끝이었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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