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자기 며칠 날이 더웠던 덕분에이삭이 패는가 싶었는데, 금새 밀알이 여물어 갑니다.올해 악양의 밀농사는 형편이 썩 좋지 않습니다.다른 밀밭 사진을 찍어볼까 하다가 맘 편히 카메라를 들이댈 사정이 아니어서그만 두었어요.봄이네 논은 '얼금이 논'에 가깝습니다.작년에 다른 논들은 밀씨를 뿌리고 며칠 지나지 않아폭우가 쏟아져서 대개 하루이틀씩 꼬박 물에 잠겨 있었습니다.그 때 씨가 다 녹아버려서 싹도 안 난 밀밭이 대부분이지요.봄이네 논은 논 농사 짓기에는 좋지 않은 얼금이 논이지만,그 덕에 폭우가 쏟아져도 금세 물이 빠진 덕분에 밀이 제대로 났습니다.어쨌든, 밀을 다 빻아서 자루에 담아야 알겠지만,그래도 지금까지는 잘 자라고 있습니다. 이 녀석이 금강밀입니다.올해는 금강밀을 적게 심었습니다. 금강밀은 아무래도..
밥집 메뉴에는 국 한 그릇.이 있다.2008년 하동에 내려왔을 때만 해도 버스터미널이 공사중이었다. 새로 지어진 이상하고, 불편하고, 사람 내쫓는, 터미널이 들어서기 전,다들 '차부'라고 불렀던, 그곳에는 할매들이 졸졸이 늘어앉아서 재첩국을 팔았다.마치 장날 길바닥에 나물 늘어놓듯, 다라니 몇 개 놓고국통 놓고, 널빤지 몇 개 걸고는, 대접에 국을 담아줬다.그러면 다 큰(!) 아저씨들이 그 앞에 쪼그리고 앉아서국 한 대접씩을 받아 훌훌 마시고 천원짜리 두 장을 내밀고는 일어섰다.그렇게 해장국으로 한 그릇 마시고,참으로도 한 그릇 마신다.터미널을 새로 지었고, 차부 한켠에서 재첩국 팔던 할매도, 새로 없어졌다.[국 한 그릇]이라는 메뉴를 보고 갸웃거리는 사람들은아주 젊은 사람이거나, 이곳 말씨가 아니거나 ..
밥집 열 준비를 하고,감자를 심고, 책 펴낼 일을 하고,밥집을 열어서 장사를 하고.그러는 동안 봄이와 동동이는 저 알아서 잘 크고 있습니다.지난 주말, 아주 오랫만에 날도 조금 풀렸겠다, 마침 옆 마을에 다녀올 일도 생기고 해서, 봄이와 동동이와 걷고 걷고 놀고 그랬습니다. 동동이는 이제 제법 걸음마를 합니다.자꾸 넘어지고, 주저앉고 그럽니다만.날만 밝으면 신발 신고 밖에 나가겠다.고 합니다. 봄이는 늘 생기발랄, 동동이가 걷는 사이골목 이쪽 끝에서 저쪽 끝까지 몇 번이나 뛰어갔다 뛰어왔다. 그러고도 오후에는 일요일, 텅 빈 중학교에서좀 더 뛰어놀기. ( + 한동안 못한 사진찍기) 봄이 머리 위로는 매화입니다.적고 보니, 지난 주말이 아니라 벌써 지지난 주말이네요. 4월 첫날의 사진들입니다.(며칠 앓고 ..
봄이네가 악양에 내려온 게 2008년입니다. 봄이를 악양에서 낳았고, 이제 봄이는 다섯살이지요. 봄이네 살림이 어디로 가는지, 그동안의 좌충우돌만도 적지 않았습니다만, 지난 월요일 그러니까 3월 19일에 봄이네는 하동 읍내에 작은 밥집을 열었습니다. 하동경찰서 건너편, 오래되고 작은 가게들이 늘어서 있는 건물 끄트머리 자리입니다. 오랫동안 비어 있던 가게였어요. 밥집에서 내는 것은 가마솥 곰국, 추어탕, 육회비빔밥. 이렇게 세 가지이고, 문을 여는 시간은 아침은 6시 30분부터 9시까지. 점심은 11시 30분부터 2시까지입니다. 아침부터 밥집을 지키고 있는 것은 아내의 몫이고, 저는 점심에만 나가서 아내를 돕습니다만, 5년차 봄이네살림.의 ( ) 시작인 것만은 틀림없습니다. 벌써부터, 시작하기 전부터. ..
(정월) 보름에는 나물을 조물조물 무쳐가지고, 밥하고 들고가서 소를 멕인다고. 여물통에 두고 이래 봐. 나물을 먼저 먹으믄 시절이 좋다 하고, 밥을 먼저 먹으믄 풍년이 든다 해. 뭐, 이래도 좋고 저래도 좋은 거지. 보름 아침에는 아이들이 온 마을 집집이 다 돌아댕기믄서 밥 읃으러 댕겨. 뭐, 읎이 사나 있이 사나 이날은 다 똑같이 밥 얻으러 댕기지. 솥에 한 솥씩 해 놓고 퍼 줘. 아이들이 우구루루 몰려오믄 바가지마다 가득가득 담아 줘. 동동이 돌이 지나고, 설, 보름, 하드레가 차례차례 지난 다음 이월 보름도 엊그제 지났습니다. 악양에도 따뜻한 안개가 한번 짙게 끼고는 날이 더 풀렸구요. 동네 머슴집(!)에 맞게 지낼 요량이라면 벌써 한참 전에 농사일이 한창이어야 했겠지만, 아직은 다른 일들로 그러지..
밭에는 시금치며 배추가 새파랗습니다. 작년 한해는 저 자신도, 또 저와 아주 가까운 사람들 몇몇에게도, 쉽지 않은 해였지요. 어쨌거나 2011년은 지나갔고, 2012년 새해에도 저와 아내와 아이들은 이렇게 (오롯이 먹는 일에만 집중하게 만드는!) 맛난 밥상 앞에서 난리 복대기를 치며 끼니를 잇습니다. 상에 오른 거의 모든 것이 봄이네 논과 밭에서 난 것인 (게다가 밥 때에 맞추어 갓 솎아낸 것들이 있는) 밥상은, 문 열고 동네 어귀를 돌아나갈 때 보이는 땅과 산자락들과 더불어 나날의 힘이 됩니다. 봄이는 싱싱하고 좋은 재료를 놀랍게 잘 알아봅니다. 봄이의 절대 미각에 대해서는 몇 차례 연재를 하면 좋겠다 싶을 만큼이지요. 봄이네 뒤주에는 한해 먹을 곡식과 종자가 있고, 항아리에는 장과 김치와 모과차와 효..
어제 모과차를 보내드렸습니다. 이것은 선물세트로 보내드릴 때의 모양새입니다. 이렇게 싸서 스티로폼 상자에 넣어서 보내드렸어요. 직접 선물 받는 분께 보내신 분은 어떻게 가는지 궁금해 하실 것 같아서 사진 올렸습니다. 모과차, 쨈 하나, 밀가루(금강밀) 하나. 이렇게입니다. 모과차와 쨈 두 병 세트는 이렇구요. 병에 담아 놓고 보면 역시 모과차 빛깔이 좋다. 싶어요. 모양도 제멋대로에, 껍질도 쥐락펴락하고, 검은 티도 많고, 그런 것을 씻고, 썰고!! 재어 놓았다가 이렇게 하나씩 병에 담아 놓고는 다들 뿌듯해하고 감탄하고 그러는 거지요. 포장을 마친 방안에 모과향이 가득합니다. * 모과차에 검은 티처럼 보이는 것이 조금씩 있을 수 있습니다. 모과 껍질에서 나온 것입니다. 산골에서 약이나 비료, 아무 것도 ..
한해 내내 꼬박, 어려운 날씨였습니다. 봄이네처럼 그리 농사가 많지 않은 집이라 할지라도, 시골에서 지내고 있으면, (농사 말고 또 다른 많은 일에서도) 날씨에 따라 사람의 삶이란 얼마나 쉽게 휘청일 수 있는지 마음을 졸이고, 몸뚱이가 고생을 하면서 알게 됩니다. 12월이 되어서도 날씨는 여전합니다. 밭에서는 얼마 전 잘라먹은 부추에서 다시 싹이 납니다. 악양이 볕 좋고, 따뜻한 곳이라고는 합니다만, 그래도 지금은 12월인데 말이지요. 상추가 이런 모양으로 자라고 있을 계절은 절대 아니어야 하는데요. 밭에는 시금치, 상추, 부추, 쑥갓에 또 몇 가지 푸성귀까지. 몇 잎 뜯어다가 된장 한 종지만 놓고 쌈밥으로 끼니를 때울 지경입니다. 이렇게 파릇파릇한 게, 밥 먹는 순간에야 좋지만, 그뿐입니다. 가을에 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