밭에는 매화나무가 몇 그루 있다. 매화가 한송이씩 피기 시작하는 것에 맞추어 봄 밭일을 시작한다.
봄맞이로 맨 처음 하는 일은 겨울을 뚫고 저절로 올라온 밭에 난 나물을 캐는 일이다. 그러니까 씨앗을 뿌리기도 전에 자연이 선물한 봄 선물을 잔뜩 얻어 들고 오는 것부터 하는 셈이다.
시금치와 냉이를 커다란 고무 대야에 쏟아 놓고 하나씩 다듬는다. 조금 구부정하게 앉았다. 저녁에는 찬바람이 불어서 아궁이에 불을 때 방바닥은 절절 끓게 했다. 엉덩이가 데는 거 아닌가 싶을 만큼. 그러고 꼼짝없이 앉은 채로 아내와 머리를 맞대고 나물을 다듬는 시간.아이들도 밭에 나와 호미를 쥐고 쪼그려 앉았다. 온통 냉이밭이다. 하나둘 꽃대 올라오는 것도 있으니 보이는 족족 캔다. 냉이 향이 달곰하다. 가을에 씨 뿌려 놓은 시금치도 캐고, 땅바닥에 착 달라붙어 겨울 난 상추며 봄동 몇 포기 남겨 두었던 것도 마저 해 왔다.
그래도 몇 번 나물해 온 이력이 있다고, 밭에서 얼추 큰 흙덩어리는 떨고 왔다. 시금치의 빨간 뿌리를 다듬어 가지런히 두고, 냉이는 흙을 떨고 마른 잎을 떼낸다.
어릴 때 기억을 잘 해내는 편은 아닌데, 손으로 꼽는 몇 장면이 있다. 집에서 나물 다듬는 것을 가끔 도왔던 것도 그 가운데 하나. 나물을 담은 그릇, 펼쳐 놓은 신문지, 작은 창으로 드는 햇볕 따위가 또렷하다. 집에서는 별로 말이 없었지만 이때만큼은 무언가 어머니와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다. 아내와도 마찬가지. 아내하고야 물론 평소에도 말이 많은 사이지만, 가만히 앉아 냉이 뿌리에 묻은 흙을 떨어가면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으면, 평소 같지 않게 사람이 저절로 온순해지고, 사리도 좀 밝아지는 기분이 들고, 심지어 입담이 늘어 유머러스한 이야기도 그럴듯하게 해내는 거 아닌가 하는 마음마저 생긴다. 아내와는 서로 책 읽어 주는 것을 아주 좋아라 하는데, 흙 묻은 푸성귀를 다듬으면서 생각나는 이야기를 집어 올리는 것도 그에 못지않은 시간이다.
게다가 이런 시간에는 아이들도 부모 마음을 따라가는 것인지, 어떻게든 한쪽 자리를 차지하고 앉아서 일을 거들거나, 그도 아니면 조용히 제 하고 싶은 일을 한다. 이야기에 끼어드는 것도 갑자기 한 살씩은 더 먹은 듯, 조신해 지는 것이다. 부모가 컴퓨터 앞에 앉아 있을 때에는 바쁘다고 바쁘다고 소리를 꽥꽥 질러도, 어떻게 해서든 훼방을 놓게 마련인데, 살림살이하느라 손을 놀리고 있을 때에는 그저 좀 더 가까이에서 들여다보겠다고 머리를 들이미는 게 고작이다.
이런 대목에서, ‘만약 서울에서 살았으면’ 하는 생각이 머릿속에 걸리지 않을 수 없다. 아내와 서울에서 같이 산 기간은 그리 길지 않아서 1년쯤. 둘 다 저녁으로는 함께 시장 다니는 것을 좋아하고, 찬거리를 사 들고 와서 저녁밥을 하고는 했지만, 아무리 시장에서 사는 것이라고는 해도, 이미 손질이 다 된 것들이니, 나물 다듬는 저녁을 함께 보낸 기억은 없었다. 내려오지 않았다면, 줄곧 없었을 터.
찬거리를 마련하는 것이야 소소한 축에 드는 것이겠다. 시골 살림을 살면서 식구들끼리 나눠서 하는 어지간한 다른 일들도 도시에서는 대개 이런 식으로 돈을 줘서 남에게 일을 시키고, 그렇게 시간을 아껴서는 다시 그 돈을 버느라 시간에 쫓기듯 일을 하며 지냈던 것이다.
이제 한 달쯤 지나 5월이 되면, 생멸치를 몇 상자 들인다. 농협에서 공동구매를 하는 것인데, 경매장에서 떼 오는 것을 곧바로 집집마다 가져다준다. 그것을 받아다가 멀쩡하게 생긴 멸치는 골라서 안쵸비 병조림을 몇 병 만들고, 나머지로는 멸치젓을 담근다. 멸치를 고르는 새벽은 나물 다듬는 저녁과는 아주 분위기가 딴판이어서, 그저 둘이서만 붙어 일을 하는 데도 왁자하고 들뜨는 기분이 난다. 어스름한 새벽에 비린내 나는 생멸치를 상자째 놓고 한 마리씩 멸치 낯짝을 살피고 있으면 바닷가 어판장에라도 나온 듯 목소리가 커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