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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계마을

논둑 반죽

haeum_se 2010. 6. 19. 23:23



그제, 적었던, 논둑하기.
어제 오늘 이틀에 걸쳐서 마무리되었다.
이게, 모내기 준비하면서, 가장 되다(고되다).
물론, 사진은 없다.
이 일을 하면서 장인 어른께 몇 번이나 들었던 이야기는
'거, 지금 하면 안 돼.'였다.
'치대가지고, 기다맀다가 해야 된다고. 지금하면 안 돼.'
'물기 좀 가라앉으면 해야지. 지금하면 안 돼.'

논둑 옆 관리기가 지나간 자리를 따라 물을 댄다.
이게 하루쯤 걸린다. 관리기 지나간 자리에
물이 잘 차오르도록 물길을 손 보는 것도 미리 해 놓아야 한다.
논둑이 어지간히 젖고, 물이 얼마간 차오르길 기다렸다가 
논둑 바르는 일을 한다.
한 해에 한 번, 하는 일이니, 
작년에 어찌 했는가 도무지 기억이 나질 않는다.
뭐하고, 뭐하고, 뭐한다.라는 식으로 일 순서는 기억해도, 그것 뿐이다.
괭이를 들고 논둑에 서면, 
나와 괭이와 논둑이 서로 어색하니 멀금하게 섰는다.
장인 어른은 이 일을 열다섯에 배우셨다 하셨다.
그러므로, 관리기를 한 번 쓰는 것을 빼면,
나머지는 장인 어른이 그 때 배운 방식 그대로다.
장인 어른 일 하시는 것을 보고 논 옆집 어르신이 말씀하셨다.

   일꾼 중에 상일꾼 보다 잘 하시니 일을 어데서 배우셨소?

내년에도 또 멀금한. 상황이 벌어지는 건, 쫌 그러니까.
간단히 정리해보면.

1. 삽이나 괭이로 논둑을 깎는다. 
   작년에도 그랬지만. 이게 꽤 많이 깎는다. 우리집 논이 논둑이 넓기 때문인가 모르겠다.
   해마다 이렇게 많이 깎으면 논둑이 너무 얇아지는 거 아닌가 싶었는데, 
   하지만, 논둑의 넓이는 줄지 않았다. 장모님은 당신 어릴 적 논둑들은 훨씬 좁았다고 하셨다. 

       논둑이 쫍아. 타박타박 한 발 디딜 수 있을 만큼이었어. 할매가 허리가 꼬부라져가지고 논둑을 디디고
       논물을 보러 다니고 그랬는데, 뒤에 따라가면서. 촐싹거리고 놀다가 아랫논에 쳐박혔어. 
       한 발만 잘못 디디면 그냥 쳐박혔지. 그래 논둑이 좁았어.

2. 괭이로 흙을 치댄다. 발로 밟아서 반죽을 한다. 적당히 반죽이 흠뻑 젖기를 기다린다. 논둑에 구멍이 있으면 메꾼다.
   논둑 깎아 놓은 흙하고 관리기로 갈아 놓은 흙하고, 물에 잠겨 있는 논흙을 괭이로 치대고 발로도 밟아서
   잘 반죽을 한다. 반죽을 해 놓은 모양새는 밀가루 반죽에 가깝고, 일이 되기로는 쎄멘 섞는 것에 가깝다.
   쎄멘 섞는 데모도를 해 보신 분이라면, 쉽게 알겠다. 이게 이틀 꼬박 쎄멘 치대는 일인 것이다.
   
3. 괭이로 흙을 물높이 정도로 끌어올린다. 반죽이 덩어리가 질 만큼 물기가 빠지도록 기다린다.
   옆에서 장인 어른 따라하다가, 이 대목에서 말을 들었다. '지금하면 안 돼.'
   이 일을 하기 전에, 흙을 좀 둬야 하는 것이다. 물을 흠뻑 먹을 수 있게.
   아무리 발로 치대고 반죽을 했어도, 곧바로 흙을 끌어올리면, 덩어리진 것이 생긴다.
   따라서 혼자 일할 때는, 일을 한 가지씩 한 번에 다 끝내는게 아니라,
   논둑 깎기 조금 하고, 다시 돌아와서, 반죽 조금 하고, 다시 흙 좀 끌어올리고,
   이런 식으로 적당한 구간을 정해서, 일의 단계를 바꿔간다. 
   그러니, 일을 하는 동안 논둑은 손이 아직 안 간 곳도 있고,
   얼마간은 깎여 있고, 얼마는 흙이 올라와 있고, 나머지는 진흙이 잘 발라져 있고, 그런 모양새다.

4. 논둑에 한 발, 논에 한 발을 딛고, 흙을 밑에서부터 끌어올린다. 
   괭이질이 끝나면, 그나마 힘이 조금은 덜 든다. 그래도 논둑에 흙을 바를 때는 아래쪽 흙이 위에 
   올라앉도록 발라야 튼튼하게 잘 발라진다. 물이 줄줄 흐르는 진흙이니 경사를 적당히 주어서
   흙이 너무 흘러 내리지 않게 하고, 손으로 꾹꾹 눌러가면서 문대준다.
   
5. 논둑 겉이 마르면, 다시 한번 물을 바르면서 제사한다.


옛날에는 다들 이렇게 논둑을 했다고 하지만, 
요즘은 이렇게까지 논둑 일을 하는 집을 보기가 어렵다.
논둑에 콩을 심는 집이라고 해도 마찬가지. 
올해도 우리집 논둑은 장인 어른 작품이라 할 수 있는데,
다른 집 논둑과 견주면 태가 다르다. 
자, 이제 올해 논농사 준비가 다 되었네. 하는 기분이 든다.
논둑을 이렇게 정성들여 하는 첫번째 이유는 물을 잘 가두기 위해서다. 
요즘은 우리처럼 논둑에 콩을 심는 집도 드물고,
콩을 안 심을 때는 아예 논둑 일을 하지 않고, 비닐을 덮어 씌우는 경우도 많다.(물만 안 새면 되니까.)
일손이 없으니, 그렇게 할 수밖에 없다. 
논일은 힘 쓰는 것이 많아서 남자 일이라는데,
할매 혼자 너른 논을 두고 끙끙 대면서 일하는 논이 한두마지기가 아니다.
그래도 쌀값은 떨어진다.

이제, 내일은 트랙터가 와서 논을 간다.
커다란 트랙터가 논에 들어와 그 큰 바퀴로 논흙을 헤집고 다니는 것을 보는 건, 
불편하고 힘든 광경이다. 차차 뭔가 다른 방법이 생기겠지.




덧.
이곳 하동은 매실이 좋다. (매실로는 섬진강 건너 광양이 더 유명하긴 하다.)
오늘 내일 매실 파물이 나오고, 올해 매실철이 끝날 것이다.
모내기 시즌과 딱, 겹치긴 했는데,
나무 심구고 여즉 한 번도 약도 안 치고, 비료도 안 한, 
(산 높은 데 있어 놔서, 뭐 하러 올라가기가 어려븐 까닭이라고.)
매실이 있다길래. 냉큼 한 자루 사서 씨를 발라내기 시작했다.
이걸로 쨈 담글 예정. 적당히 여유 있게 샀으니,
매실 쨈을 맛보고 싶으시다면, 조만간 올라올 소식을 기대하셔도 좋을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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