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파 한 단은 만원. 오이 두 개는 오천원. 배추 한 통은 칠천원. 상추 한 근은 만원. 시금치 한 움큼은 오천원. 무 한 개는 사천원. 11월에 다시 공사를 할 예정이라 자재도 부려야 하고, 작업도 해야 해서, 그냥 놀려두었던 마당 한 켠에 부랴부랴 모종도 심고, 씨도 뿌리고 했습니다. 뭐든 나는 만큼이라도 거둬서 먹자 했지요. 사진에 싹 난 것들이 제대로 자란다면(물론 그럴리는 없지만.) 대략 십만원쯤? 모종은 심은 지 며칠 되지 않아서 금세 가난한 사람들처럼. 그렇게 어린 것이 또 누군가 잎을 갉아먹어버렸습니다만, 이틀이 지난 오늘 아침에는 다시 멀쩡하게 자라고 있습니다. 담장에는 박이 자랍니다. 박나물은 노각 비슷하지만, 노각처럼 시큼한 맛은 없고, 담백하고 시원합니다. 씹을 때도 우무 비슷하게 ..
이틀 날이 맑고 볕이 좋으니, 이제서야 조금 살만한 생각이 납니다. 하지만, 요즘 마을에는 작년 재작년에 견주어서 허수아비며 새 쫓는 줄이며 치렁치렁하고, 여기저기 눈에 많이 띄어요. 새 쫓는 할매들도 심심찮게 볼 수 있습니다. 작년 재작년에는 한 번도 보지 못 했거든요. 봄이네 논에는 혹명나방 애벌레가 찾아왔습니다. 이른 논에는 새가 붙고, 늦은 논에는 벌레가 붙는 꼴입니다. 한여름, 벼가 아직 어릴 때에도 잎 끝이 마르고 병이 도는가 싶었는데요, 지금은 늦게까지 거름 기운이 많아서 벌레가 꼬인답니다. 뭐, 아는 게 없으니, 유기농 자재를 비싼 돈 주고, 넘치도록 부은 게 틀림없습니다. 그러면 (다른 논보다) 늦게까지 벼가 자라고, 잎이 보들보들하고, 벌레가 그것 먹겠다고 달려든다고 윗논 어르신이 알려..
악양에는 귀농한 사람이 많다. 젊은 사람도 꽤 있어서, '오지학교'로 분류되는 악양초등학교는 전교생이 130명이다. 원래는 악양면에 초등학교가 세 개 있던 것이 하나로 합쳐져서 이만한 규모가 되었다고는 하지만, 어쨌거나, 다른 시골에 비한다면, 읍이 아닌 면 단위 초등학교로는 아이가 많은 편이다. 귀농한 젊은 사람이 그만큼 많다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오지학교라는 딱지는 승진을 위해 애쓰는 교사들에게는 점수를 높일 수 있는 좋은 먹잇감 같은 것이어서 지금 악양초등학교에는 도시에 살면서 출퇴근하는 교사가 한둘이 아니다. 퇴근하고 집에 도착하기까지 깜깜하고 차 한 대 없는 시골 산길을 한 시간도 넘게 미친 듯 승용차를 몰아 가야 한다. 이게, 서울에서 출퇴근 한시간.하고는 다른 거라, "젊은 선생이 도시에서..
며칠 전 마산에 있는 조산원에 다녀왔다. 봄이를 낳을 때도 원래 계획은 서울의 일신조산원에서 출산을 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임신 중에 몇 차례 찾아가서 이런저런 이야기도 듣고 그랬는데, 하동에 내려와 있을 때, 아이를 낳게 되어서 진주의 병원을 이용했던 것. 이 사연도 제법 길어서, 몇 번 되지 않는 산부인과 경험만으로도 반드시 상추쌈 출판사의 출간 계획에 임신과 출산에 관한 책을 넣자는 결론을 내렸다. 여하튼, 하동에 살면서 수도권에 있는 조산원에 갈 수도 없고, (하동에는 산부인과도, 소아과도 없다.) 봄이를 낳았던 진주의 산부인과는 그나마 모자 보호를 하는 병원이라, 어두운 환경에서 남편도 옆에 있을 수 있고, 뭐 그런 병원이었지만, 결론은 간단. '병원은 병원' 3,4년 전 까지 진주에 조산원이 ..
쨈과 효소 첫발송한 게 벌써 지난주 월요일입니다. 그리고 벌써 목요일이라니, 믿을 수가 없군요. 그 사이 벼에 이삭이 패었고, 동네 할매들, 토란대 까서 말리는 일이 시작되었습니다. 장마는 끝났다지만, 봄부터 지금까지 늘 비가 자주 오는 날이라 토란대 널어 말리는 것도 툭하면 말렸다가 걷었다가, 지랄 같습니다. 가을에도 비가 자주 내린다 합니다. 이삭 팬 것이 잘 여물까 싶습니다. 지난 주에 쨈과 효소 보내드리면서 곡절이 많았습니다. 1. 밀기울 못 보내드렸습니다. 처음 포스팅 올리기 며칠 전에 확인했을 때만 해도 멀쩡했으나, 주문 다 받고, 발송 하루 앞두고, 조금씩 포장하겠다고 꺼냈을 때는, 이미 두어 가지 벌레가 가마니 여기저기에서 먼저 밀기울 맛을 보고 있었습니다. 통밀가루는 더 빨리 상하거나, ..
7월이 가기 전.이라고 말씀드렸지만, 며칠 늦어졌습니다. 기다리신 분도 있을 거라 지레 짐작 해 봅니다. 죄송합니다. 해를 넘기고 처음 가게 문을 여는 것이라 글이 깁니다. (봄이네 살림에도 이렇게 스크롤 압박이 대단한 글이 올라오다니, 저 스스로도 놀랍습니다. 다음부터 혹여 이만한 길이의 글이 올라온다면, 반드시 따로 보실 수 있게 pdf 따위를 첨부하겠습니다.) 정도의 내공에 올라섰으면 간단 명료하게 글이 끝날 수도 있겠지만, 아직은 뭐 그 정도는 아니라는 자체 심사 결과가 나왔으니, 그 뭔가를 어찌 만들었나 설명이 길어집니다. 가장 중요한 품목이었던 밀가루는 내년으로 미루어지고, 푹푹 찌는 여름, 봄이네 가게에서 선 보일 것들은, 1. 쨈 : 매실쩀, 살구쨈, 배쨈 올 여름 새로 졸인 쨈은 매실쨈과..
어디 갈 때 빈손으로 가는 거 아니다. 라고 소싯적부터 들어왔지만, 어디 갈 때 빈손인가 아닌가 챙기는 것은 늘 아내의 몫이다. 지난 번 글에서 적어놓았던 지리산 밀가루 팀이 찾아왔다. 지리산 이장, 월인정원, 운조루 아저씨, 그리고 오랫동안 같은 회사에서 일했던 동료이면서, 어쩌다 멀지 않은 곳에 자리를 잡은 사무총장과 사무장, 여기 블로그보다 늘 풍성한 포스팅을 하는 블로거들이니, 아직 가 본 적이 없다면, 들러볼 만 하겠다. 밀가루 빻을 곳을 찾다가 봄이네 옆집 방아실에 오셨다. 밀가루 빻으러 오시면서 들르는 것이었으나, 단지 빈 손으로 가는 거 아니다, 수준을 넘어서 양 손 가득 이것저것 들고 오셨다. (물론 챙기는 것은 월인정원과 사무총장이.) 월인정원과 사무총장의 선물 셋뜨. 사진이 이 모양이..
작년에 처음으로, 밀을 거두었습니다. 그리고, 참으로 여러 사람들과 이 밀을 나눌 수 있었지요. 하나하나 고마운 분들이었습니다. 그렇게 인연이 닿아서 한 해가 지난 지금까지 어설프게 시골 살림을 꾸려가는 봄이네한테 큰 도움이 되는 분들도 많이 있습니다. 하지만, 올해, 밀가루를 파는 즐겁고도 고된 일은 하지 못 하게 되었습니다. 얼마 전 밀 타작하는 것, 짧게나마 알려드렸습니다. 올해, 봄을 겪은 농작물은 모두 어렵게 어렵게 살았습니다. 아마도, 다른 나라도 우리처럼 농사가 좋지 않았거나, 혹은 우리가 돈이 없는 가난한 나라이거나, 뭐, 여튼 몇 가지 사정 가운데 하나만이라도 더 맞아 떨어졌다면 가난한 많은 사람들은 배를 곯는 것이 아주 걱정이 될 만한 그런 봄이었습니다. 밀 소출은 작년의 절반, 혹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