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해에 한 번쯤.봄이네 집에 들르는 손님이 있습니다.아이들은 아주 어릴 때부터 송이 할머니라고 부르며 따릅니다. 가끔 오시는 손님이지만.오실 때마다 가방에 몇 가지 재료를 싸 오셔서는오코노미야끼, 가라아게, 스끼야끼, 링구아게... 잠깐 부엌을 스쳐 지나듯 하는 사이,맛난 일본 음식을 해 주십니다.송이 상이 한번 다녀가고 나면아내의 음식 가짓수가 하나둘 늘어나요. 그러니까, 저와 아내가 신혼여행으로오사카에 갔을 때, 묵었던 집이송이 상의 집이었어요.아내가 선생님의 책 담당 편집자였거든요.며칠 그 집에 머무르면서 선생님이 해 주신 밥.그것을 함께 먹은 기억.그게 가장 남아요. 여행에서 돌아온 지금까지.봄이네 부부가 몇 사람, 마음 깊이두는 선생님, 가운데 한 사람입니다. 송이 상과 함께,오사카의 집밥 음..
메주콩.없어서는 안 되는 것인데, 서울 살면서는 한 번도 사 보지 않은 곡식.된장이든, 간장이든. 콩나물이든, 두부든.무엇이든 콩과 물과 소금 정도의 배합만으로 이루어진다는 것을 알았을 때꽤 놀랐지요. 메주 쑤는 날은 김장 하는 날 못지 않게 중한 날이니, 아이들 모두 곁에서 일하는 것을 지켜보게 합니다. 올해는 겨울이 따뜻하니까 메주 삶는 것도 좀 더 추우면 하자 하고 미루고 미루다가 겨우 날을 잡았습니다. 아이들 셋이 저마다 메주 한 덩이씩 만들어 보겠다고 찹찹찹, 맨손으로 콩 찧은 것을 두들깁니다. 옆에서 조금씩만 거들면 어느 틈에 메주 비슷한 모양이 나오기는 해요. 올해 세 살이 된 막내 녀석은 삶은 콩을 줏어 먹느라 바쁘기는 하지만. 그래도 저도 두들깁니다. 봄이 외할아버지는 아침 일찍부터 콩을..
지난 12월, 날은 따뜻합니다. 올해도 어김없이 별다른 사연을 달아 매고 밀싹이 올라옵니다. 11월에 밀씨를 뿌리는데, 그 무렵에 유난히 비가 많이 왔어요. 밀이나 보리 뿌릴 때 비가 많아서 논에 물이 들면 씨앗들이 다 못쓰게 됩니다. 물에 잠긴 채 며칠 있으면 '다 녹아삐리'거든요. 언젠가 저희 논이 얼그미 논이라는 이야기를 했지요. 얼그미 논이라는 게 바닥이 얼금얼금해서 물이 잘 빠지는 논이라는 말입니다. 그러니 물을 가둬서 논 농사 짓기에는 안 좋은데, 어쩌다 이렇게 밀 농사 지을 때 좋은 구석도 있는 거지요.그렇게 말을 들은 이후로는 비가 와도 별 걱정없이 밀을 뿌렸는데, 올해는 장마처럼 비가 내리니 씨 뿌릴 하루, 날 잡기가 어려웠습니다. 겨우 씨를 뿌리긴 했지만, 논흙이 아주 진흙덩이가 되어서..
파장이었다. 문을 닫은 가게들이 더 많았다. 환한 등불이 걸린 가겟집 주인들은 길가로 나온 물건들을 상자에 담고 있거나, 커다란 천막을 펼쳐서 뒤집어 씌우거나,혹은 의자에 앉아 띄엄띄엄 지나가는 사람들을 하나씩 빤히 쳐다보곤 했다.어릴 적 심부름 하느라 콩나물 한 봉지, 파 한 단, 감자 몇 개, 두부 한 모 따위를사 나르던 채소전과 닮은 가게 앞에서, 오랜만에 익숙하고도 편안했다.가.형광등 아래 철 모른 채 새파랗고 새빨갛고 반짝이는 피망이며, 호박이며,가지며, 오이들을 한참이나 낯 모르는 손님 대하듯 쳐다 보았다. 집으로 오는 길에 아이들은 잠이 들었다. 지인의 결혼식이 있었고,진주 공설운동장에서는 갖가지 천막과 장사와 전시장이 버무려진주제를 알기 어려운 짬뽕의 축제가 있었다.평소에 무언가를 사 주는..
밀가루.기다리고 있다 하신 분이 여럿 계셨습니다만.올해 그동안 밀 타작을 해온 이래,(뭐, 평소에도 적은 편이었습니다만.)가장 소출이 적었습니다.예약을 하셨던 분들의 밀가루도 꽤나 줄여서 보내드리고,봄이네 먹을 것도 한참 모자라고.국수 뽑을 밀가루는 하나도 없고.그래서 죄송하게도.올해 밀가루가 없습니다.국수는 도저히 없이 살기 어렵겠다 싶어서,(요즘 수입밀 국수를 먹으면 속이 힘들어요...)마을에서 토종밀 농사를 짓는다른 분의 밀가루를 사다가 조금 뽑기로 했습니다. 봄이네 살림. 시작하고 곧, 첫 밀가루 소식을 전하고,또 소식을 들은 사람들이 다시 이야기를 돌려 주고.그렇게 그 힘으로, 지금껏 지내 왔습니다만.아쉬운 밀가루 소식을 전하고는 한 가지 간단히 덧붙입니다. 한동안 봄이네에서 무엇 내놓을 게 있..
섬진강에는 재첩이 산다. 하구둑이 생기기 전에는 낙동강에도 살았다 한다.그때 부산에 살았던 사람 여럿이, 아침마다재첩국 장사 소리를 들었다는 이야기를 해 줬다.지금이라도 하구둑을 헐거나 문이라도 항상 열어 놓거나 하면,재첩이 다시 살 수 있겠지. 그래서 지금 재첩이 남아 있는 강은 섬진강을 빼고 몇 없다.바다로 열린 강에만 재첩이 산다.예전에는 보리타작 끝나고 나면재첩국 장사가 악양을 돌았다고 한다.그게 불과 십 수년 전. 밀 타작을 하기 전이었다.그러니 지난 포스팅의 제비 사진보다도 며칠 이른 것.온 식구가 섬진강에 나갔다.아이들은 놀고. 처음으로 강에 나와 노는 강이.물이 따뜻하다.그렇지. 올해 5월말. 이무렵만 해도 많이 더워서여름을 어찌 보내나 했는데,막상 지난 달, 이번 달. 그리 덥지 않다. ..
처음 본 것은 5월 말.어미가 먼저 마당에 들락거렸다.그렇게 며칠 어미가 한참씩 전깃줄에 앉아있더니 엊그제부터 아침마다 식구들 모두 모여 있다.꼬리에 채 떨어지지 않은 솜털을 달고(이틀 내내 그러고 있다.)전깃줄에 앉아서 나는 연습을 하고,어미가 물어다 주는 벌레를 받아 먹는다. 어쩌면 내년에 저 새끼 제비들은 다시 이곳에 돌아와서는우리 집 처마 밑에 둥지를 칠 지도 모르겠다.새끼가 넷.어미는 암수가 번갈아 든다.담장 바깥으로 고양이가 천천히 걸어왔는데,당장에 어미 두 마리가 번갈아 고양이를 놀래킨다.쫓아낸다.새끼들은 가만히 보고 있다.깃을 다듬고 저마다 먹이를 두어 번쯤 받아 먹은 다음날아갔다. 병조림을 만드는 것은 제철에 나는 것을냉장고의 힘을 빌지 않고 담을 수 있어서 좋았다.아내의 지인은 토마토 ..
__________ 날것의 완두를 내고, 또 한쪽으로 완두 앙금과 완두콩 병조림을 만들었습니다. 월인정원님의 글을 읽고 찾아오신 분들이 많으시지요. 아직 보내드릴 것이 있습니다. 마감이 되면, 여기에서 알려 드리겠습니다. 주문하시는 법과 종류는 아래에 적었습니다. 병조림과 앙금은 6월 8일 이후에 발송됩니다. * 완두콩, 앙금, 병조림 마감합니다. 음, 다른 것은 있어요... __________ 봄이네 밭이 있는 곳. 마을 끄트머리 깔끄막을 조금 올라선 자리. 그 위로 비탈에 칸칸이 논이 있다. 비탈을 마을 어른들은 갈밧등.이라고 하신다. 이름을 맞게 옮겨 적었는지는 모르겠다. 그것은 오로지 말로만 전하는 이름이니까. 봄이네 밭도 원래는 논이었던 자리. 이웃들의 땅도 밭으로 바뀐 자리가 여럿. 논에서 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