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월) 보름에는 나물을 조물조물 무쳐가지고, 밥하고 들고가서 소를 멕인다고. 여물통에 두고 이래 봐. 나물을 먼저 먹으믄 시절이 좋다 하고, 밥을 먼저 먹으믄 풍년이 든다 해. 뭐, 이래도 좋고 저래도 좋은 거지. 보름 아침에는 아이들이 온 마을 집집이 다 돌아댕기믄서 밥 읃으러 댕겨. 뭐, 읎이 사나 있이 사나 이날은 다 똑같이 밥 얻으러 댕기지. 솥에 한 솥씩 해 놓고 퍼 줘. 아이들이 우구루루 몰려오믄 바가지마다 가득가득 담아 줘. 동동이 돌이 지나고, 설, 보름, 하드레가 차례차례 지난 다음 이월 보름도 엊그제 지났습니다. 악양에도 따뜻한 안개가 한번 짙게 끼고는 날이 더 풀렸구요. 동네 머슴집(!)에 맞게 지낼 요량이라면 벌써 한참 전에 농사일이 한창이어야 했겠지만, 아직은 다른 일들로 그러지..
밭에는 시금치며 배추가 새파랗습니다. 작년 한해는 저 자신도, 또 저와 아주 가까운 사람들 몇몇에게도, 쉽지 않은 해였지요. 어쨌거나 2011년은 지나갔고, 2012년 새해에도 저와 아내와 아이들은 이렇게 (오롯이 먹는 일에만 집중하게 만드는!) 맛난 밥상 앞에서 난리 복대기를 치며 끼니를 잇습니다. 상에 오른 거의 모든 것이 봄이네 논과 밭에서 난 것인 (게다가 밥 때에 맞추어 갓 솎아낸 것들이 있는) 밥상은, 문 열고 동네 어귀를 돌아나갈 때 보이는 땅과 산자락들과 더불어 나날의 힘이 됩니다. 봄이는 싱싱하고 좋은 재료를 놀랍게 잘 알아봅니다. 봄이의 절대 미각에 대해서는 몇 차례 연재를 하면 좋겠다 싶을 만큼이지요. 봄이네 뒤주에는 한해 먹을 곡식과 종자가 있고, 항아리에는 장과 김치와 모과차와 효..
어제 모과차를 보내드렸습니다. 이것은 선물세트로 보내드릴 때의 모양새입니다. 이렇게 싸서 스티로폼 상자에 넣어서 보내드렸어요. 직접 선물 받는 분께 보내신 분은 어떻게 가는지 궁금해 하실 것 같아서 사진 올렸습니다. 모과차, 쨈 하나, 밀가루(금강밀) 하나. 이렇게입니다. 모과차와 쨈 두 병 세트는 이렇구요. 병에 담아 놓고 보면 역시 모과차 빛깔이 좋다. 싶어요. 모양도 제멋대로에, 껍질도 쥐락펴락하고, 검은 티도 많고, 그런 것을 씻고, 썰고!! 재어 놓았다가 이렇게 하나씩 병에 담아 놓고는 다들 뿌듯해하고 감탄하고 그러는 거지요. 포장을 마친 방안에 모과향이 가득합니다. * 모과차에 검은 티처럼 보이는 것이 조금씩 있을 수 있습니다. 모과 껍질에서 나온 것입니다. 산골에서 약이나 비료, 아무 것도 ..
한해 내내 꼬박, 어려운 날씨였습니다. 봄이네처럼 그리 농사가 많지 않은 집이라 할지라도, 시골에서 지내고 있으면, (농사 말고 또 다른 많은 일에서도) 날씨에 따라 사람의 삶이란 얼마나 쉽게 휘청일 수 있는지 마음을 졸이고, 몸뚱이가 고생을 하면서 알게 됩니다. 12월이 되어서도 날씨는 여전합니다. 밭에서는 얼마 전 잘라먹은 부추에서 다시 싹이 납니다. 악양이 볕 좋고, 따뜻한 곳이라고는 합니다만, 그래도 지금은 12월인데 말이지요. 상추가 이런 모양으로 자라고 있을 계절은 절대 아니어야 하는데요. 밭에는 시금치, 상추, 부추, 쑥갓에 또 몇 가지 푸성귀까지. 몇 잎 뜯어다가 된장 한 종지만 놓고 쌈밥으로 끼니를 때울 지경입니다. 이렇게 파릇파릇한 게, 밥 먹는 순간에야 좋지만, 그뿐입니다. 가을에 갈..
여름내 비가 오더니, 가뭄이 심해서, 다 말라 비틀어지는 가을이었습니다. 악양은 어디든 감나무가 줄줄이 늘어선 마을인데요, 옆집 아저씨가 지나는 말로 "감이 나무에 매달리가 곶감이 되겠네." 하실 만큼이었습니다. 해걸이에, 좋지 않은 날씨에, 감나무마다 감이 겨우 열댓개 달린 것이 많았는데, 잘 익어야 할 때에도 날씨가 나빴던 것이지요. 나락도 좋지 않았습니다. 다들 농사가 좋지 않긴 했습니다만, 봄이네는 쫌 유난. __; 올해 가을 유난히 콩이며 깻단 널어 놓은 것이 많습니다. 볕 잘드는 봄이네 집 담벼락에는 동네 사람들이 돌아가며 콩단과 깻단을 세워 말립니다. 아마도 작년 겨울 갑작스레 논에 감나무 심은 집이 많은 까닭일 겁니다. 그런 것이 아니어도, 부러 논에다가 콩 심은 집들도 많았고요. 건너건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