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작한 밀은 볕에 잘 널어 말렸습니다. 이미 논에서 바짝 마른 밀을 타작한 까닭에 금세 마를 것 같습니다. 밀알을 깨물어서 경쾌한 '톡' 소리가 나면 잘 마른 겁니다. 이틀이나 사흘쯤 말립니다. 물론 볕에 널어 말리는 것은 날씨따라. 며칠이 될 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좀 튼튼한 모기장 처럼 생긴 건조망을 깔고, 그 위에 타작한 밀을 쏟아서 고무래 같은 것으로 골고루 펴줍니다. 그리고는 끼니 먹고 한 번씩, 그 사이에 한 번씩, 고무래로 뒤적여서 위아래를 뒤바꾸어 주지요. 장마가 하루라도 늦어지기를 바랄 뿐입니다. 밀은 말리는 것도 그렇지만, 비가 오는 날에는 밀가루를 빻을 수도 없거든요. 관리기입니다. 봄이네에, 기름 넣어서 돌아가는 유일한 농기계입니다. 네, 그 흔한 예취기도 없고, 물론 경운기도 ..
탈곡한 날은 아무리 씻어도 온 몸이 깔끄럽고, 따갑고, 가렵습니다. 얼른, 간단히, 쓰고 자야 할 텐데요. 모레부터 장마라고 하니, 그 전에 밀이 다 마를랑가 모르겠습니다. 그나마 바짝 마른 상태에서 타작을 해서 후딱 마를 것 같기는 합니다만. 콤바인이 들어올 준비가 되었으니, 오늘은 참 준비하고, 콤바인과 콤바인 모는 아저씨가 오시기만 기다립니다. 낫도 하나 챙깁니다. 콤바인이라는 게, 뭐 운전하는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아무래도, 덩치가 큰 기계이다 보니, 밀을 밟기도 하고, 한 줄 쪼로로미 남기기도 하고, 여하튼, 타작을 하면서 버려지는 밀이 꽤 됩니다. 게다가. 봄이네는 유기농이지 않습니까. 물론 유기농으로 한다고 다 그런 것은 아닙니다만, 아직은 서툰 것이 많으니, 밀이 키가 작다거나, 풀이 덤불..
드디어, 시즌.이 시작되었습니다. 봄.이라고 하기에는 조금 늦었고, 초여름이라고 해 두죠. 사진이 한 컷도 없는 것은 밥 먹을 때 사진기 챙겨야지, 했던 것이 장화 신고, 낫 챙기고, 하는 사이 새하얗게 지워지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매 끼니마다 되풀이됩니다. 짤막하게라도, 밀 타작에서 모내기로 이어지는 봄 이중일을 '날마다' 올려보겠다는 결심을 한 것은 물론, 작년 일이 쫌 가물가물한 것이 있기 때문입니다. 어제는 콤바인을 위하야 논 가장자리를 따라 밀을 베어냈습니다. 기계로 베다 보면, 맨 가장자리는 제대로 베지 못 하고 남겨지거든요. 중부 지방이나, 뭐 어지간한 동네는 이미 모내기를 끝냈습니다. 악양에도 모내기 끝낸 곳이 많지요. 하지만, 밀 농사를 짓는 집은 모내기가 늘 꼴찌입니다. (따라서 가을..
봄이 외할머니는 재주가 많습니다. (물론 외할아버지도. 그렇긴 하지만.) 뜨게질도 그 중에 하나이지요. 얼마 전, 실패를 챙기는가 싶더니 한달 사이에 봄이 옷 두 벌을 해 주셨습니다. 얼마만에 하는 건지 모르겠다시면서도, 다른 일 다 하시는 가운데 짬짬이 하시면서도, 무슨 본 같은 건 전혀 보지도 않으시고도, 휘리릭 재깍재깍 옷 두 벌입니다. 봄이 얼굴 실컷 보시라고 오랫만에 봄이 사진 연작입니다. 이렇게 사진 여럿 올리다보니, 그 동안 올려야겠다고 마음만 먹었던 사진들이 생각납니다. 봄이는 옷을 거의 사 입히지 않았거든요. 시골에 내려와서 아이 옷을 사 입혀야 하는 상황이었다면 정말 고생했지 싶습니다. 돈도 돈이거니와, 인터넷으로만 사기도 그렇고, 나가서 사려면, 진주든 순천이든 도시까지 나가야 하고요..
며칠 꼬박 앓아누웠더랬습니다. 악양에 내려온 이래로 가장 되게 앓았어요. 덕분에 알게 된 것은 하동 읍에 있는 의원들은 링게루 주사 놓고, 환자 쉬고 하는 자리를 침대가 아니라 뜨끈한 방바닥으로 만들어 놓았다는 것입니다. 정말 편했습니다. 옆자리 누운 할매가 코만 안 곯았다면 더 좋았을 텐데요. 앓기 전에 막 피기 시작하던 감꽃이 꼭지마다 곱게 말려 올라 있습니다. 감꽃이 피고, 매실을 따기 시작하고, 모내기 하려고 물 댄 논이 하나씩 늘고. 밀도 익어갑니다. 작년, 재작년하고는 정말 다른 분위기입니다. 매실은 수확이 작년 절반쯤이다 하시는 분이 많구요, 감나무도 튼실하지는 않습니다. 게다가 섬진강 가까이에서 자라는 하동 배에는 병이 돌아서 이미 열린 과일 가운데 반쯤은 썩었다 합니다. 밀도 마찬가지입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