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2월, 날은 따뜻합니다. 올해도 어김없이 별다른 사연을 달아 매고 밀싹이 올라옵니다. 11월에 밀씨를 뿌리는데, 그 무렵에 유난히 비가 많이 왔어요. 밀이나 보리 뿌릴 때 비가 많아서 논에 물이 들면 씨앗들이 다 못쓰게 됩니다. 물에 잠긴 채 며칠 있으면 '다 녹아삐리'거든요. 언젠가 저희 논이 얼그미 논이라는 이야기를 했지요. 얼그미 논이라는 게 바닥이 얼금얼금해서 물이 잘 빠지는 논이라는 말입니다. 그러니 물을 가둬서 논 농사 짓기에는 안 좋은데, 어쩌다 이렇게 밀 농사 지을 때 좋은 구석도 있는 거지요.그렇게 말을 들은 이후로는 비가 와도 별 걱정없이 밀을 뿌렸는데, 올해는 장마처럼 비가 내리니 씨 뿌릴 하루, 날 잡기가 어려웠습니다. 겨우 씨를 뿌리긴 했지만, 논흙이 아주 진흙덩이가 되어서..
섬진강에는 재첩이 산다. 하구둑이 생기기 전에는 낙동강에도 살았다 한다.그때 부산에 살았던 사람 여럿이, 아침마다재첩국 장사 소리를 들었다는 이야기를 해 줬다.지금이라도 하구둑을 헐거나 문이라도 항상 열어 놓거나 하면,재첩이 다시 살 수 있겠지. 그래서 지금 재첩이 남아 있는 강은 섬진강을 빼고 몇 없다.바다로 열린 강에만 재첩이 산다.예전에는 보리타작 끝나고 나면재첩국 장사가 악양을 돌았다고 한다.그게 불과 십 수년 전. 밀 타작을 하기 전이었다.그러니 지난 포스팅의 제비 사진보다도 며칠 이른 것.온 식구가 섬진강에 나갔다.아이들은 놀고. 처음으로 강에 나와 노는 강이.물이 따뜻하다.그렇지. 올해 5월말. 이무렵만 해도 많이 더워서여름을 어찌 보내나 했는데,막상 지난 달, 이번 달. 그리 덥지 않다. ..
자전거를 새로 마련했다.봄이가 18개월쯤일 때, 자전거 사진을 몇 장 올려둔 것이 있었다. 이때 자전거는 혼자 살면서 출퇴근 하는 데에 쓴다고 샀던 것이다.십년도 더 전이었고, 그때 살 때 이미 싼값의(아마도 오만 원쯤...) 중고 자전거였는데,이제 바퀴며 기어며 손잡이며 저마다 고치든가, 새것으로 바꾸든가 하라고 성화였다.한동안 자전거를 타고 나갈 때마다 바람을 넣어가며 타다가,결국 큰 수리를 해야 되는 상황.(예전 사진을 뒤적이면 깜짝깜짝 놀란다. 얘, 누구지? 봄이야? 강이야?) 새 자전거를 마련했다.예전 자전거에 있던 안장을 떼어 오고,몇 가지 부속을 바꿔 달았다.자기 필요에 맞는 자전거 고르기가 조금 복잡했다.자동차 살 때 수동변속기 골라 사기 어렵듯이자전거도 그런 경향이 있다. 내게 필요한 자..
올해 초에 밭에다가 귤나무, 한라봉, 금귤, 레몬나무를한 그루씩 심었어요.귤나무에는 제법 귤이 열렸습니다. 이것은 레몬나무.레몬은 아직 올해에는 열리지 않았습니다.악양은 남해에서 차로 삼십분 쯤이에요.그만큼 따뜻하기는 하지만,그래도 이 나무들이 지내기에는 겨울이 춥습니다. 그래서 작게 [비닐집-온실]을 지었어요.나무들 겨울나기도 돕고,옆에다가는 푸성귀라도 조금 심어서겨울에도 밭에서 난 채소를 뜯어먹으려구요. 처음에는 흔한 비닐하우스 자재를 쓰려고 했는데.비닐집을 아주 작게 짓는 것이다보니,오히려 비닐하우스 자재를 쓰는 게 돈이 더 들게 생겼어요.중고 자재를 쓴다고 해도 마찬가지였지요.그래서 집 지을 때 쓰는 나무 각재를 구해다가 뼈대를 만들고비닐을 둘렀습니다.그저 이렇게 하면 무너지지는 않겠지 하는 어림..
깨 털고, 콩 털고집집마다 그러고 있습니다.며칠 비가 오니 마당 한 켠, 담벼락 한쪽으로깻단 묶은 것이 비닐을 쓰고 서 있는 집도 많아요. 들깨는 많이 심지 않았어요.그저 잎채소로 따먹고, 들깨죽 몇번 끓일 만큼입니다.그래도 들깨 터는 날에는 어느 집에서 들깨를 털든온 마을에 들깨 냄새가 가득합니다. 서리태 풋콩도 조금 해서는 밥에 놓아 먹고 있어요.동동이는 날마다 콩 없는 밥과 콩 있는 밥을번갈아 주문합니다. 작년에 담근 장도 갈랐어요.맛이 잘 들었습니다. 몽쳐진 메주를 조물거리고 있으니아이들이 한 손가락씩 푹 찍어 먹습니다.항아리에 간장, 된장 자리를 잡고 앉혀 놓으니뒤주에 곡식 쌓아놓은 기분이 나요. 유난히 뱀을 많이 본 가을이었어요.집 앞에서도 살모사를 두 번이나 보았지요.다른 곳에서도 보고.꽃뱀..
아마도, 막 9월이 시작될 무렵일 겁니다.여름은 그리 덥지 않았지만,그렇다고 가을이 일찍 온 것은 아니었어요. 여름내 얼려두었던 완두로는 앙금을 만들어서토종밀 밀가루 반죽으로 만주를 구워 먹었습니다.아이들, 특히 단맛을 좋아하는 동동이가 좋아했어요.엄마가 구운 것 가운데 이렇게 단 것이 없었거든요.저 역시도 아내가 아이들 것이 아니고 제 것이라고찜해 준 것은 하나도 남김없이 얼른 먹었다는. 올해 토종밀이 맛이 좋았어요. 덕분에 이렇게 간단하게 구운머핀을 자주 먹었지요. 이제 프랜챠이즈 빵집에 발길을 끊은 것도 몇 년. 올해 마지막 남은 쌀을 찧었습니다.아마도 방앗간에 쌀을 맡기는 집 가운데 저희만큼찔끔찔끔 쌀을 찧는 집도 얼마 없을 거예요.방앗간 옆집의 특권 비슷한 것. 타작을 하기 전에 마지막 도정을 ..
지난 여름_01에서 이어지는 것. 0809 김매러 갈 때, 아이들이 종종 따라나선다. 우리 논에는 논물 드는 물길이 개울처럼 흘러들게 되어 있다. 봄이와 동동이는 그 좁은 자리에서 몇 시간이고 물장난을 친다.그렇게 놀고는 동동이는 짐차 뒷자리에서 자고, 봄이는 저 혼자 더 논다.이날은 날씨도 좋고, 김매기도 얼추 끝이 보이는 때여서, 잠시 여유를 부려가며 일하다 말고 사진도 찍었다. 그러니까, 이런 사진을 그저 평소에. 찍을 수 있다는 게,아이한테나 나한테나 좋은 것 아니냐. 으쓱해지는 게 있다.물론, 그런 것은 사진같은 풍경이 금세 지나가듯, 지나가지만. 0809 날은 저녁까지, 깜깜해질 때까지 좋았다.위에 불 큰 것 두 개는 뒷집.맨 아래가 봄이네 집. 0812 날이 그리 덥지 않았다.벼르고 벼르다가..
가끔씩이기는 해도, 블로그에 종종 글을 올리다 보니, 틈나는 대로 애써 사진을 찍는다. 사진이 없으면 글이 잘 이어지지 않고, 또 사진이 없는 기억은 쉽게 사라지게 되었다. 지난 일을 찍어 놓은 사진이 많으니까, 어지간한 일들은 사진에 있을 거라 믿고, 까먹어 버리는 것이다. 폰에 담긴 전화번호나 마찬가지. 하지만, 필요한 기억을 끄집어내려고, 사진을 들춰보는 일은 별로 없다. 사진은 너무 많고, 정작 중요한 순간에는 (당연히.) 사진기를 들 여유가 없다. 여튼, 해마다 이상한 날씨의 여름. 8월이지만, 여름이 지나버린 것은 분명하다. 아래의 것은 지난 여름 사진기를 들었던 순간들 가운데 몇몇 장면. 사진을 찍을 때는 사진 하나에 이야기 하나 졸가리가 잡혀 있었지만, 지금 모아놓으니, 간단한 장면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