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수 널어 말리는 곳이 실내인 것을 보고,내가 실망하는 눈치였다는 것을 알아챘다.국수집 젊은 후계자는 널어 놓은 면발 앞에서이렇게 말을 꺼냈다."햇볕이 쨍한 곳에 널어 말리면 좋을 것 같지만.그렇지 않아요. 적당한 시간 동안 천천히 마르는 게 좋지요." 올해, 봄이네살림이 국수 뽑은 집은 작년과 다른 집.이곳은 토종밀로 국수를 뽑은 경험은 거의 없었지만,70년, 3대를 잇고 있는 집이다. 국수집 안에는 2대와 3대가 함께 일을 하고 있다.이야기를 나누던 중에 벌컥 문이 열리고 동네 아저씨가 들어온다."왕면, 왕면 있어? 왕면으로 두 개 줘." 국수집은 내가 어릴 때 살던 동네.한집 건너 한집. 반지하에서 미싱이나, 혹은 양말기계를 한 두대씩 놓고 돌리던 그런 가정집을 닮아 있다.고개를 수그리고 들어갈 만..
사위가 깜깜해진 밤에전조등을 켜고 운전을 하는 일은 드뭅니다.어쩌다가 서울에 일보고 올 때에버스나 기차에서 내려서 거기서부터 집까지 돌아오는 길. 정도.어제는 가까이에 온 지인을 만나고 깜깜한 밤길을 달려 집으로 돌아왔습니다.가드레일을 따라 고라니가 고개를 기웃거리며빠져나갈 자리를 찾고 있었습니다.찬찬히 자리를 찾을 만큼 침착한 녀석이니잘 빠져나갔을 겁니다.그러고나서오늘은 한낮에 찻길을 건너는 고라니를 보았습니다.아마도, 그 동안 제가 보았던 고라니 가운데길을 건너는 녀석으로는 가장 여유로웠던 녀석이었을 겁니다.유럽 어디였는지, 아니면 일본이었는지.길을 걷는 사람들 옆으로 나란히 걸었던사슴같은, 그런 자태였습니다. 논일 하다가는 도롱뇽을 만나기도 했어요.봄이네 논으로 드는 물은 한쪽은 산에서 내려오고,또..
셋째, 강이가 태어났습니다.봄이, 동동이, 강이, 아내와 저.다섯 식구가 되었습니다. 제 형처럼 강이도 부엌방에서 태어났습니다.새벽녘이었고, 정월이기는 했지만, 날은 따뜻했어요.아이도 엄마도 건강하고, 또 자연스레 늘 그 자리였던 듯.봄이는 남동생이 둘이나 있는 누나가 되었고,동동이는 누나와 동생이 있는 둘째가 되었습니다.강이는 누나나 형보다는 조금 느긋한지 태어나서 일 주일이 되어서야 눈을 뜨고 둘레를 찬찬히 살펴봅니다.잘 먹고, 밤에도 서너 시간씩 잘 자고 있습니다.다섯 식구 봄이네 살림입니다. 이제 정월 대보름도 지나고, 따뜻한 겨울이었으니여느 해보다 이르게 농사일이 시작되겠지요.세 아이 이야기가 어찌 펼쳐질 지는 물론상상하는 것, 그 이상이 되겠지만,아이들은 잘 자고, 잘 먹고, 잘 놀고, 많이 ..
12월이 며칠 남지 않았지만, 봄동은 내내 겨울을 버틸 태세.저런 모양새로 지내야 겨울을 넘기겠지요.꼭꼭 어깨를 붙이고 모여 있는 것을 보니 따뜻합니다.아, 침이 고이기도 하고요. 11월이었죠. 내내 덥다가, 갑자기 추웠더랬습니다.허나 12월은 그럭저럭 춥지는 않은 겨울.악양은 그렇게 보내고 있습니다.봄동 솎아다가 사흘동안 아침 밥상에 올려 두고 먹었습니다.아삭거리고 맛있기는 합니다만,그래도 봄에 먹는 봄동하고는 다르구나. 그랬습니다. 청경채도 아직 솎아먹을 것이 남아 있습니다. 마늘. 그리고, 아이들이 겨를 덮었던 양파.겨우내 눈 덮인 때에도 이것들이 있어서 밭이 푸를 겁니다. 볕 좋은 날에 솥을 걸고 닭을 잡았습니다.네. 작년과 같이, 수탉이 몇 마리 있었으므로,장닭 한 마리와 암탉들을 남기고 수탉 ..
오이며 가지 따위가 꼬시라져가고, 무싹을 때때로 솎아다가 무쳐 먹습니다.배추는 하루가 다르게 커가고 있고요.벌레가 있는지 돌보아야 하는데... 할머니 할아버지가 산에서 다래를 따 오셨습니다.가을 들어설 때에,다래만 한 열매가 없지요.조금 푸릇푸릇한 것들은 독아지에 넣어 두고익혀 가며 하나씩 꺼내 먹습니다. 봄이는 여섯 시가 조금 넘으면 일어납니다.아침 바람이 서늘했던 어느 날에마루에 나가 혼자 노는가 싶더니,신문지 한 장을 덮고 이러고 누웠습니다.아래로 발이 나왔길래, 한 장을 더 덮어 주었더니,이러고 있으니까 따뜻하다 합니다. 궁극의 신문지 사용법을 어디서 깨쳐왔는지. 그리고, 아이들과 함께 괴산에 다녀왔습니다.올해로 세번째. 늘 가고 싶었지만 이제서야 처음 보러 갔지요.시골 촌구석, 폐교 운동장에서 ..
가을이 되기까지 너무 메말랐는지.쉽게 보기 어려운 손님이 집 안 마당까지 찾아왔다. 마당 이쪽 끝에서 저쪽까지 가로지르려면 한나절은 족히 걸릴 것 같은 도롱뇽.물이 없는 곳에서는 살지 않는다.박우물에서도 산다고 하니,꼭, 심심산골에서만 살았던 것은 아닌데, 보기 어렵다. 그래도 이렇게 어슬렁거리면서 집안까지 들어온 것을 보면그저 사람 눈에 띄지 않는 재주가 좋은 녀석이라고생각하기로 했다.여튼, 멀지 않은 곳에 살다가, 물이 말라서 어디든 찾아다닌 것이겠지.가까운 곳에 동네 우물이 있고, 또 작은 도랑도 있었지만,어디에서 살았는지는 알 수 없었고,조금 높은 곳에 데려다 주었다. 게아재비도 왔다.내려와서 물에 사는 어지간한 곤충은 다 만났더랬는데,게아재비는 처음.이번에 자세히 들여다보고 알게 되었는데,사마귀..
올해 첫 고구마 순.따다가 저녁에 둘러 앉아서 껍질을 벗긴다.옛날에는 이거 안 까고 그냥 먹었어.그럼, 이거 까고 앉았을 짬이 어딨어. 그냥 무쳐도 먹고 그랬지.토란대도 안 벗기고 그냥 먹었는데.엊그제 더위에 고구마 순을 하다가돌아가신 할머니 이야기도 한다.우리가 먹는 것, 팔할은 그런 심성 지닌 손을 거쳤겠지. 해마다 옥수수가 익는다.장마가 지나고 날이 뜨거워질때, 옥수수를 찐다.올해 것은 또, 작년 것보다 맛이 좋다.작년에도 참 맛있다 하면서 먹었는데,밭을 마련하고 삼 년차인 올해 옥수수는 경이로운 맛.http://haeumj.tistory.com/86이것이 재작년 옥수수. 동동이가 봄이처럼 컸다. 그래서 해마다 옥수수를 더 심는다.갓 딴 옥수수를 얼른 가져다가 삶아 먹는다.알알이 촉촉하고, 쫄깃하고..
매실은 잠깐 사이.지나갔어요. 이미 오래전에예약하신 분들께 보내드리고는 조금 남은 것으로 매실장아찌 담고 끝.올해는 봄이네가 따로 효소 담글 것도 없었다는.해마다 날씨 안 좋다는 이야기만 하는 것 같은데,올해는 또 봄에 늦게까지 추웠더랬죠.그러다가 갑자기, 곧바로, 여름 진입.그래서 다른 집도 그렇고 매실이 많이 안 났어요.그나마 요며칠 조금 흐리고 선선해서 다행. 작년, 재작년 해서 밭에 몇 가지 과일나무를 심었어요.아이들이 자라면 때맞춰과일 따 먹으러 밭에 가겠지요. 그렇게 갈 때마다 밭일도 알아서 하고 와야하는데요. 흠.크기는 자두만 하지만, 어엿한 복숭아. 아직 나무들도 어려요.열매도 조그마하게, 조금씩 달리는 중. 붉은빛 자두는 잎도 붉은빛.단단하게 잘 익으면 좋겠어요.아이들도.모두 올해 처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