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 털고, 콩 털고집집마다 그러고 있습니다.며칠 비가 오니 마당 한 켠, 담벼락 한쪽으로깻단 묶은 것이 비닐을 쓰고 서 있는 집도 많아요. 들깨는 많이 심지 않았어요.그저 잎채소로 따먹고, 들깨죽 몇번 끓일 만큼입니다.그래도 들깨 터는 날에는 어느 집에서 들깨를 털든온 마을에 들깨 냄새가 가득합니다. 서리태 풋콩도 조금 해서는 밥에 놓아 먹고 있어요.동동이는 날마다 콩 없는 밥과 콩 있는 밥을번갈아 주문합니다. 작년에 담근 장도 갈랐어요.맛이 잘 들었습니다. 몽쳐진 메주를 조물거리고 있으니아이들이 한 손가락씩 푹 찍어 먹습니다.항아리에 간장, 된장 자리를 잡고 앉혀 놓으니뒤주에 곡식 쌓아놓은 기분이 나요. 유난히 뱀을 많이 본 가을이었어요.집 앞에서도 살모사를 두 번이나 보았지요.다른 곳에서도 보고.꽃뱀..
아마도, 막 9월이 시작될 무렵일 겁니다.여름은 그리 덥지 않았지만,그렇다고 가을이 일찍 온 것은 아니었어요. 여름내 얼려두었던 완두로는 앙금을 만들어서토종밀 밀가루 반죽으로 만주를 구워 먹었습니다.아이들, 특히 단맛을 좋아하는 동동이가 좋아했어요.엄마가 구운 것 가운데 이렇게 단 것이 없었거든요.저 역시도 아내가 아이들 것이 아니고 제 것이라고찜해 준 것은 하나도 남김없이 얼른 먹었다는. 올해 토종밀이 맛이 좋았어요. 덕분에 이렇게 간단하게 구운머핀을 자주 먹었지요. 이제 프랜챠이즈 빵집에 발길을 끊은 것도 몇 년. 올해 마지막 남은 쌀을 찧었습니다.아마도 방앗간에 쌀을 맡기는 집 가운데 저희만큼찔끔찔끔 쌀을 찧는 집도 얼마 없을 거예요.방앗간 옆집의 특권 비슷한 것. 타작을 하기 전에 마지막 도정을 ..
지난 여름_01에서 이어지는 것. 0809 김매러 갈 때, 아이들이 종종 따라나선다. 우리 논에는 논물 드는 물길이 개울처럼 흘러들게 되어 있다. 봄이와 동동이는 그 좁은 자리에서 몇 시간이고 물장난을 친다.그렇게 놀고는 동동이는 짐차 뒷자리에서 자고, 봄이는 저 혼자 더 논다.이날은 날씨도 좋고, 김매기도 얼추 끝이 보이는 때여서, 잠시 여유를 부려가며 일하다 말고 사진도 찍었다. 그러니까, 이런 사진을 그저 평소에. 찍을 수 있다는 게,아이한테나 나한테나 좋은 것 아니냐. 으쓱해지는 게 있다.물론, 그런 것은 사진같은 풍경이 금세 지나가듯, 지나가지만. 0809 날은 저녁까지, 깜깜해질 때까지 좋았다.위에 불 큰 것 두 개는 뒷집.맨 아래가 봄이네 집. 0812 날이 그리 덥지 않았다.벼르고 벼르다가..
가끔씩이기는 해도, 블로그에 종종 글을 올리다 보니, 틈나는 대로 애써 사진을 찍는다. 사진이 없으면 글이 잘 이어지지 않고, 또 사진이 없는 기억은 쉽게 사라지게 되었다. 지난 일을 찍어 놓은 사진이 많으니까, 어지간한 일들은 사진에 있을 거라 믿고, 까먹어 버리는 것이다. 폰에 담긴 전화번호나 마찬가지. 하지만, 필요한 기억을 끄집어내려고, 사진을 들춰보는 일은 별로 없다. 사진은 너무 많고, 정작 중요한 순간에는 (당연히.) 사진기를 들 여유가 없다. 여튼, 해마다 이상한 날씨의 여름. 8월이지만, 여름이 지나버린 것은 분명하다. 아래의 것은 지난 여름 사진기를 들었던 순간들 가운데 몇몇 장면. 사진을 찍을 때는 사진 하나에 이야기 하나 졸가리가 잡혀 있었지만, 지금 모아놓으니, 간단한 장면들. 0..
국수 널어 말리는 곳이 실내인 것을 보고,내가 실망하는 눈치였다는 것을 알아챘다.국수집 젊은 후계자는 널어 놓은 면발 앞에서이렇게 말을 꺼냈다."햇볕이 쨍한 곳에 널어 말리면 좋을 것 같지만.그렇지 않아요. 적당한 시간 동안 천천히 마르는 게 좋지요." 올해, 봄이네살림이 국수 뽑은 집은 작년과 다른 집.이곳은 토종밀로 국수를 뽑은 경험은 거의 없었지만,70년, 3대를 잇고 있는 집이다. 국수집 안에는 2대와 3대가 함께 일을 하고 있다.이야기를 나누던 중에 벌컥 문이 열리고 동네 아저씨가 들어온다."왕면, 왕면 있어? 왕면으로 두 개 줘." 국수집은 내가 어릴 때 살던 동네.한집 건너 한집. 반지하에서 미싱이나, 혹은 양말기계를 한 두대씩 놓고 돌리던 그런 가정집을 닮아 있다.고개를 수그리고 들어갈 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