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과 나갔다가 잔가지를 주워 왔다."할머니는 늘 이런 거 주워다가 때셨어." 작은 장보기용 수레를 끌고 다니시는 할머니들은밭에 갔다 오거나, 어디든 다니는 길에떨어진 잔가지가 있으면 하나씩 둘씩 주워 나른다. 늘, 장작 혹은 그 비슷한 나무들만 때었는데,잔가지를 때고 있으니, 좀 더 좋다.금방 타들어가기는 하지만, 아궁이에다가 밥 하기에는이게 더 좋은 거 아닌가 싶기도 하고. 봄이가 꽤 컸으니, 이제는 집을 조금 손보아야 하는데,잠 자는 방 하나는, 기름 보일러이고, 하나는 구들이던 것을난방은 하나로 이어서 구들을 놓을 작정이다.불 때는 건 아이들한테 하라 해야지.
날이 풀렸다.보름이 지난 지도 꽤 되었고.아이들은 다시 학교에 다니기 시작한 첫 주말. 밭에 나서 있으면여기저기 경운기 소리, 관리기 소리가 난다.옆 밭 주인도 관리기를 들고 나와서 땅을 갈았다.이제 여기에 뭔가를 심어야 할 테니겨우내 캐고 남은 시금치와 냉이를 마저 캔다.냉이는 이제 꽃대가 하나씩 올라오는 것이 있다. 봄나물이 가득해서 밭이 푸르다.학교 안 가는 날, 밭에 나온 아이들. 닭장 옆으로는 더덕을 심고,감자 심을 땅에는 왕겨를 뿌렸다.왕겨를 뿌리고 땅을 갈아놓으면감자가 자라는 것이나, 나중에 캐는 데에 도움이 될 것이다. 돌아와 냉이를 다듬는다.커다란 다라니에 캐 온 시금치와 냉이를 쏟아 놓고하나씩 다듬는다.조금 구부정하게 앉았다.저녁에는 찬바람이 불어서 방바닥은 절절 끓게 했다.엉덩이가 디..
한 해에 한 번쯤.봄이네 집에 들르는 손님이 있습니다.아이들은 아주 어릴 때부터 송이 할머니라고 부르며 따릅니다. 가끔 오시는 손님이지만.오실 때마다 가방에 몇 가지 재료를 싸 오셔서는오코노미야끼, 가라아게, 스끼야끼, 링구아게... 잠깐 부엌을 스쳐 지나듯 하는 사이,맛난 일본 음식을 해 주십니다.송이 상이 한번 다녀가고 나면아내의 음식 가짓수가 하나둘 늘어나요. 그러니까, 저와 아내가 신혼여행으로오사카에 갔을 때, 묵었던 집이송이 상의 집이었어요.아내가 선생님의 책 담당 편집자였거든요.며칠 그 집에 머무르면서 선생님이 해 주신 밥.그것을 함께 먹은 기억.그게 가장 남아요. 여행에서 돌아온 지금까지.봄이네 부부가 몇 사람, 마음 깊이두는 선생님, 가운데 한 사람입니다. 송이 상과 함께,오사카의 집밥 음..
메주콩.없어서는 안 되는 것인데, 서울 살면서는 한 번도 사 보지 않은 곡식.된장이든, 간장이든. 콩나물이든, 두부든.무엇이든 콩과 물과 소금 정도의 배합만으로 이루어진다는 것을 알았을 때꽤 놀랐지요. 메주 쑤는 날은 김장 하는 날 못지 않게 중한 날이니, 아이들 모두 곁에서 일하는 것을 지켜보게 합니다. 올해는 겨울이 따뜻하니까 메주 삶는 것도 좀 더 추우면 하자 하고 미루고 미루다가 겨우 날을 잡았습니다. 아이들 셋이 저마다 메주 한 덩이씩 만들어 보겠다고 찹찹찹, 맨손으로 콩 찧은 것을 두들깁니다. 옆에서 조금씩만 거들면 어느 틈에 메주 비슷한 모양이 나오기는 해요. 올해 세 살이 된 막내 녀석은 삶은 콩을 줏어 먹느라 바쁘기는 하지만. 그래도 저도 두들깁니다. 봄이 외할아버지는 아침 일찍부터 콩을..
지난 12월, 날은 따뜻합니다. 올해도 어김없이 별다른 사연을 달아 매고 밀싹이 올라옵니다. 11월에 밀씨를 뿌리는데, 그 무렵에 유난히 비가 많이 왔어요. 밀이나 보리 뿌릴 때 비가 많아서 논에 물이 들면 씨앗들이 다 못쓰게 됩니다. 물에 잠긴 채 며칠 있으면 '다 녹아삐리'거든요. 언젠가 저희 논이 얼그미 논이라는 이야기를 했지요. 얼그미 논이라는 게 바닥이 얼금얼금해서 물이 잘 빠지는 논이라는 말입니다. 그러니 물을 가둬서 논 농사 짓기에는 안 좋은데, 어쩌다 이렇게 밀 농사 지을 때 좋은 구석도 있는 거지요.그렇게 말을 들은 이후로는 비가 와도 별 걱정없이 밀을 뿌렸는데, 올해는 장마처럼 비가 내리니 씨 뿌릴 하루, 날 잡기가 어려웠습니다. 겨우 씨를 뿌리긴 했지만, 논흙이 아주 진흙덩이가 되어서..